유방암 ∙ 경험 공유

#4 뒤쳐진다는 기분 이겨내기, 파란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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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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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에게 암 진단은 삶의 일시 정지 버튼 같았어요. 세상은 계속 돌아가고 친구들은 앞으로 나아가는데, 저만 그 자리에 멈춰버린 것 같았거든요. 분명 어제랑 똑같이 아침에 눈을 떴는데, 저는 더 이상 어제의 제가 아니더라고요. 건강검진으로 우연히 발견했던 거라서 딱히 아픈 곳도 없었기에 더 비현실적이었던 것 같아요. 하루아침에 암 환자가 됐고, 제 시간만 그날 이후로 멈춰버린 느낌이었어요.

오랜만에 기운 내서 만난 친구들은 회사에서 승진도 하고, 청첩장도 나눠주고, 아기도 낳고, 여행도 다니는데… 그에 비해 저는 하루가 멀다 하고 병원을 오가고, 오늘은 또 어떤 부작용이 있을지 걱정하고, 다음 치료 일정을 체크하는 게 제가 할 수 있는 전부였어요. 예전엔 저도 친구들처럼 일을 하면서 성취감을 느끼고, 주말엔 테니스를 치고, 친구들과 약속을 잡으며 바쁘게 살았는데, 이제 그 모든 게 그냥 먼 나라 얘기처럼 느껴졌어요. 마치 나만 빼고 다 앞으로 나아가는데, 어제까지 당연했던 제 미래는 더 이상 그려지지 않는 기분이었어요.

저는 웬만한 일엔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편인데, 이번엔 그게 참 쉽지 않더라고요. 긍정 회로를 억지로 돌리려 해도 자꾸만 친구들과 저를 비교하게 되고, 그러면서 그들에게 질투를 느끼는 제 모습에 또 한 번 마음이 힘들었어요.

이래저래 몸과 마음이 점점 지쳐가는 걸 느끼고, 침대에만 누워있으니 몸 상태가 더 안 좋아지는 것 같아서 이러다간 안 되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혈액종양내과 교수님께 말씀드려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연결했어요. 의사 선생님께서는 제가 느끼는 감정들이 너무나 당연한 것이고, 정말 큰 일을 겪고 있는 게 맞다며 차분히 제 이야기를 들어주셨어요. 그러면서 일기를 써보는 게 어떻겠냐고 권해주셨어요.

그래서 일기를 쓰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힘들다고 투정 부리는 글이 많았지만, 쓰다 보니 '이러지 말아야지' 하면서 일부러라도 긍정적인 면을 보려고 애쓰며 글을 썼던 것 같아요. 그렇게 글을 쓰다 보니 신기하게 마음이 조금씩 차분해지고, 힘든 감정 속에서도 제가 암을 통해 얻은 것들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되더라고요.

저는 모든 일에는 양면이 있다고 생각해요. 내가 겪는 일이 너무나 불행한 일 같지만, 사실 그 뒷면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다른 면이 있을 수 있잖아요. 그리고 그건 정말 생각하기 나름인 것 같아요.

예전에는 건강에 대해 너무 자신만만했는데, 이번에 제대로 뒤통수를 맞고 나니 이제는 아주 열성적으로 몸을 챙기게 됐어요. 덕분에 앞으로는 제 몸을 더 잘 돌보면서 더 건강하게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폭도 조금 더 넓어진 것 같아요.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진 거죠. 이건 정말 본인이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건데, 겪어보니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더라고요. 이제 아픈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 더 헤아릴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제 주변에 얼마나 소중한 사람들이 있는지, 그들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평범했던 하루가 얼마나 감사한지도 다시금 깨달았어요. 그리고 일을 쉬게 된 덕분에, 백일 갓 지난 조카와 아주 가깝게 지내면서 손바닥만 하던 아기가 무럭무럭 커가는 모습을 매일 지켜볼 수 있었어요. 이 외에도 제가 얻은 것들은 셀 수 없이 많아요.

사실은 어제도 친구 청첩장 모임에 갔다가 괜히 조바심이 나기도 했어요. 뒤쳐진다는 기분이 하루아침에 완전히 사라지진 않겠죠. 그래도 사람마다 삶의 속도는 다르고, 저희는 지금 잠시 느린 속도로 걷고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이 시간 또한 분명 삶에서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거라고 믿어요.

나중에 오늘을 돌아보면서, '아, 그때 그렇게 아팠는데… 돌이켜보니 힘들었지만 그래도 잘 된 일이었어'라면서 미소 지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봅니다.

힐오(Heal-O) 플랫폼의 운영주체인 주식회사 케어랩스로부터 소정의 원고료를 지원받고 작성한 콘텐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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