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암 ∙ 경험 공유

#7 암 진단 후의 인간관계, 파란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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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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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은 혼자 싸우는 병이라고들 하지만, 돌이켜보면 늘 주변에서의 따뜻한 사랑과 응원이 있었던 것 같아요. 물론 항상 제가 기대했던 대로의 반응이 나오지 않기도 하고, 생각지도 못했던 사람에게 크나큰 위로를 받기도 했는데, 그래서 어떻게 보면 인간관계를 한 번 재정립하고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를 만들어주기도 했어요. 어떤 관계는 더 단단해지고, 어떤 관계는 실망하고 멀어지기도 하고,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받은 따뜻함에 눈물을 쏟기도 했어요.

처음 진단 사실을 알릴 때, 오히려 가족보다 친구들에게 먼저 알렸어요. 부모님이 너무 충격받으실 까봐 도무지 뭐라고 말을 할 수가 없겠더라구요. 거기다가 저는 해외에 살고 있어서 전화로 말을 해야할텐데 도대체 뭐라고 말을 해야하나 아무리 고민해도 답이 안나왔어요. 한 일주일을 혼자 앓다가 결국 말을 했는데, 그래도 가장 큰 의지가 되어준 존재는 역시 가족이었어요. 그들의 희생에 대한 깊은 감사함과 동시에, 나 때문에 온 가족이 고생하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 그러면서도 걱정 섞인 마음에 늘어나는 엄마의 잔소리에 대한 불만, 모든게 뒤섞여 복잡한 감정으로 몇 달을 지낸 것 같아요. 그래도 결국 저를 위해 돌봐주고, 케어해주고, 마음 써 주는 건 가족이더라구요.

그 밖의 예상치 못한 위로는 오히려 만난 지 얼마 안된 친구였어요. 최근에 알게 되어서 점점 친해지기 시작했고, 사실 아직 그렇게 깊은 얘기를 하는 친구는 아니었는데 너무 따뜻한 말로 위로를 해주더라구요. 그 뒤로도 제일 많이 연락해주고, 안부 물어주고, 위로와 응원을 보내 준 친구였어요. 그래서 단숨에 제일 친한 친구 중 하나가 되어 정말 좋은 인연을 만났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런데 사실 그것보다 더 예상치 못한 관계는 아예 모르는 사람으로부터였어요. 어느 날 친구가 다른 유방암에 걸린 아는 언니를 소개시켜주겠다면서 연락처를 넘겨받아서 처음으로 통화를 했거든요. 일면식도 없는 사이에 온갖 조언과 위로로 마음을 어루만져주는데 처음부터 두 시간 넘게 대화했어요. 그 뒤로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해주고, 본인이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조언해주고 도와주는데 정말 마음 깊은곳에서부터 감동을 받았어요. 점점 친해져서 암 뿐만이 아니라 온갖 고민을 서로 나누고 조언해주고, 이젠 같이 맛있는 것도 먹으러 다니고 하는 너무나 좋은 친구가 되었어요. 이 친구로부터 정말 많은 걸 배웠고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그러면서 저도 다른 사람들을 돕고 싶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고, 그래서 저의 경험을 나누는 글도 쓰고 다른 도울 기회가 있으면 어떻게든 도우려고 노력하게 되었어요.

그 밖에도 회사에서도 또 나름의 위로를 받았어요. 처음에 진단을 받자마자 바로 매니저랑 화상통화를 하게 되었는데,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아 한 마디도 하지 못하고 눈물만 났거든요. 제 입으로 '암'이라는 단어를 내뱉을 수가 없었어요. 현실을 아직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고 인정할 수가 없었어요. 말로 꺼내면 진짜로 사실이 되어버릴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이었어요. 매니저는 제가 진정될 때까지 한참을 기다려주고 제가 결국 말을 꺼냈을 때 '일은 조금도 신경 쓰지 말고, 너의 건강과 치료에만 집중해.' 라면서 따뜻하게 위로해줬어요. 매니저 뿐 아니라 회사와 팀 전체에서도 다행히 잘 이해해주어서 길게 휴가를 쓸 수 있었고, 지금은 비록 아직 표적 치료 중으로 모든 표준치료가 끝나지는 않았지만 회사로 복귀해서 다시 일을 시작하게 됐어요!

그리고 저에게 기쁨과 슬픔을 모두 안겨준 친구관계. 사실 친구 관계는 조금 더 다양한 모습으로 재정의되었던 것 같아요. 제가 가장 의지하고 싶었던 건 사실 주변 친구들이었거든요. 아예 회사나 친구, 가족에게 진단 사실을 알리지 않는 선택을 하는 환우분들도 있는 것 같은데 저는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응원을 받고 싶었어요. 그래서 당시에 연락을 하고 지내던 사람들에게는 대부분 암 진단을 받았다는 사실을 말했어요. 그런데 물론 많은 친구들이 위로해주고 응원해주긴 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었어요. 제가 힘겹게 말을 꺼냈을 때 제 감정보다는 본인의 감정에 취해 있기도 했고, 그 뒤로 잘 지내는 지 연락도 제대로 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어요. 물론 어떤 말도 완벽한 위로가 될 순 없었겠지만, 마치 별 거 아니라는 듯이 치부해버리는 경우도 있었구요.

제가 아마 원했던 건 그냥 자주 연락해주고 아무렇지 않게 즐거운 얘기도 하고, 제가 힘들면 힘든 얘기도 들어주고, 그렇지만 또 같이 심각하게 고민도 해주고 그런 거 였어요. 그런데 그게 쉽지 않잖아요. 어떻게 제 마음을 백퍼센트 다 알고 원하는 대로 맞춰주겠어요. 그래서 사실 아직도 그 당시의 저에게 어떤 식의 위로가 제일 좋았을 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리고 한껏 예민하고 화나 있던 시기에는 나를 돌보기에도 바빠서 그 친구들의 마음이 어땠을까 같은 건 생각해볼 겨를도 없고, 고민하고 싶지도 않았어요. 그런데 지금 와서 돌이켜보니 그들도 그 나름의 최선을 다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수도 있고, 무슨 말이 위로가 될 지 몰라 아무 말도 하지 못할 수 있었겠죠. 물론 그게 최선의 방법이라는 건 전혀 아니지만 그들도 그 나름의 최선의 표현을 했던 게 아닐까 합니다. 그저 미워하는 건 또 저의 정신건강에 좋지 않으니까요.

누군가 나에게 어떤 행동을 했는데 그 행동을 이해할 수 없을 때가 가장 마음이 힘든 것 같아요. 그래서 어떻게든 이해해보려고 많은 노력을 하잖아요. 연인과 헤어지고도 그가 대체 왜 그랬을까 몇 날, 며칠, 몇 달을 곱씹어보는 것 처럼요. 그러다가 이해가 되었을 때 마음이 편해지고, 그랬을 때 힘든 감정을 넘기고 잊어버리기도 쉬운 것 같아요. 그래서 그냥 인간관계에서 상처를 입었을 땐 마음을 열고 ‘아, 그럴 수 있겠구나’ 이해하면 제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아요. 내가 컨트롤 할 수 있는 건 내 생각과 마음 뿐이니까요.

아직도 새로운 사람을 만나거나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친구를 만날 때 이 사실을 밝혀야하나? 가발을 쓰고 가야하나? 늘 고민해요. 혹시 말하게 되면 어떤 반응이 나올 지도 무섭고, 괜히 관계에 어떤 악영향을 미치거나 처음 만난 사람과 가까워지는 데에 걸림돌이 될까 걱정이 되기도 해요. 그래도 저는 아마 많은 상황에서 밝힐 것 같아요. 제가 암과 싸워서 이겨냈다는 사실은 제가 자랑스러워 할 일이지 숨겨야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인간관계에 악영향을 주었다면 그건 그 사람의 그릇이 부족하다는 뜻으로 제 편한대로 생각하려 합니다.

암은 제 몸의 많은 것을 앗아갔지만, 동시에 남긴 것도 있어요. 힘든 상황이 닥치자 삶에서 피상적인 것들을 걷혀지고, 관계의 본질을 남겼어요. 지금 제 곁에 남아 저를 응원해주는 모든 사람들. 저의 길고 긴 전쟁에 기꺼이 참전해준 그 고마운 아군들에게 다시 한번 고맙다고 인사를 전해야겠어요.

힐오(Heal-O) 플랫폼의 운영주체인 주식회사 케어랩스로부터 소정의 원고료를 지원받고 작성한 콘텐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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