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데이비드입니다.
가입하시고 글을 남기시는 분들을 돌아보니,
아마도 이제 막 긴 여정을 시작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한 분 한 분 글을 읽어보고, 저도 그 때의 감정을 잊지 않고 되새기며
다시 삶에 대한 다짐을 해 보곤 합니다.
저는 일상이라면 일상으로 돌아온지도 5년이 넘었습니다.
그럼에도 아직도 식은땀 흘릴 정도로 겁이 나기도 하고,
갑작스럽게 삶이 이전 그 때 처럼 버겁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사실 퇴원을 하면서,
‘휴, 이제 다시 살아난건가?’
라는 생각만으로도 감사했었습니다.
그리고 일상으로의 완전한 복귀는 꿈을 꿔 보지도 않았습니다.
집 앞 산책을 50미터도 채 하기 어려운 제 장 상태 때문이었습니다.
S결장이 변을 잘 모아서 뭉쳐주는 곳인데,
그 곳이 없어지다보니 마냥 열어놓은 수도꼭지가 따로 없었죠.
그런데 몸은 놀라울 정도로 잘 적응 해 나가더라구요.
항암을 시작하면서 빠지는 머리와 검게 변해버린 얼굴은 다시 한 번 눈을 질끈 감게 만들었지만,
그 또한 견디다 보면 결국 지나가는 것 아니겠어요?
지금은 일상으로 거의(?) 완벽하게 복귀 했습니다.
그래도 순간 순간 어려운 순간들이 많았는데요.
어떤 부분들이 힘들었고, 어떻게 극복하게 되었는지
제 이야기를 들려드리면 도움이 될까 싶어 몇 가지 부분들을 나눠보려고 합니다.
1. 모든 것의 시작
저에게 화장실은 이 모든 서사의 시작입니다.
배가 싸르르 아파왔던 그 기억과 어렵사리 변을 보고 나서
변기에 피가 번지기 시작하던 그 장면이 머릿속에 훤하죠.
일상으로 어느 정도 복귀를 해 나가고 있던 어느 날, 배가 싸르르 아팠습니다.
별 생각없이 변기에 앉았을때
여전히 싸르르 아픈 배와 어렵사리 변을 보고 나서는 머리가 쭈뼛 섰습니다.
그리고 정말 변기를 못 쳐다 보겠더라구요.
그 때로 돌아간 기분이었습니다.
기분만 그때로 돌아간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그 때로 돌아간 것 처럼 너무 무섭고 두려운 마음에 벌벌 떨었어요.
저는 지금까지도 화장실 가는게 가장 겁이 납니다.
모든게 시작되었던 그 곳.
그 이후로는 제 몸의 반응과 느낌들을 기억하려고 애썼습니다.
무엇을 먹었는지, 어떤 느낌이 드는지, 그리고 무섭지만 결과를 확인하고 잊지 않으려 애썼어요.
그런 기억들 하나하나가 데이터가 되어 쌓여갈 수록,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씩 사라졌습니다.
완전히 극복은 안되더라구요.
그래도 지금은 두 눈 질끈 감을 정도까지는 아니게 되었습니다.
2. 사람들의 시선
이 정도로 아프고 나면, 사람들의 시선이 불편할 때가 많습니다.
괜찮냐는 질문에 대답하는 것도, 괜찮냐고 물어보지는 않지만
그 사람들과의 무거운 공기가 피부로 와 닿더라구요.
삶에 대한 자신감이 많이 떨어져 있는 상태라서 그런지,
먼저 다가가서 말을 건내는 건 정말 꿈에도 못 꾸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일상으로 복귀를 하고 나니 사람들을 마주치지 않을 수 없고,
그들과 함께 일하고 정말로 내가 바라는 일상으로 복귀하려면
저 자신이 정상인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아프다고 징징대고, 또 불편하게 대한다는 자격지심에 휩쌓여 있을 수록
일상으로의 복귀를 막는 건 내 자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먼저 다가가서 가까운 사람들에게 조금씩 병에 대해서,
그리고 그 동안 있었던 일에 대해서 이야기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의 안타까운 눈빛이 너무나 부담스럽기도하고, 싫기도 했지만,
생각해 보면 저라도 그런 이야기를 듣게 된다면 그런 표정과 다르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홀가분하게 내 아픔을 그 분들에게 조금 옮겨 놓고 나니,
한결 더 편하게 사람들을 대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나는 아팠던 사람입니다.
그걸 인정하고 불쌍할 수도 있고, 안쓰러운 사람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나니
조금은 마음이 편안해지더라구요.
3. 잔소리
저는 이 잔소리가 가장 신경쓰이는 것 중에 하나였어요.
가족들은 저를 안쓰럽게 바라보는 것만으로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여기저기서 듣게되는 온갖 정보들을 저에게 쏟아붇기 시작했어요.
그 중에서는 확인 되지 않은 사실도 많고,
PPL을 가장한 방송에서 얻어온 정보들도 굉장히 많았습니다.
그게 그들이 스스로를 위로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그 때는 잘 몰랐습니다.
뭔가 좋은 정보를 알려주어서 환우 가족으로서의 최선을 다 한다는 생각이었을 거예요.
하지만, 저도 이런 정보의 홍수 속에서 몸에 좋다는 것들을 먹는 것이 맞을까,
혹시나 그것들이 더 몸을 힘들게 하는 건 아닐까 하는 마음으로 방어를 하지 않을 수 없더라구요.
결국 이런 대립은 정신적인 갈등으로 치달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견디기 힘들어 하던 어느 때에, 누군가 그런 말을 하더라구요.
몸이 그렇게 아프고 병이 들었는데, 너는 병에 대해서 얼마나 아냐고. 얼마나 공부하고 있냐고.
하물며 쓰던 가전제품이 고장나도 이것저것 공부하는데, 왜 암은 공부하지 않냐고.
그래서 서점에서 뭔지도 모르는 병리학 책을 한 권 사서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각종 유튜브와 블로그 글을 찾아보면서도 근거가 부족한 글들은 처다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렇게 공부를 하기 시작하니, 조금이나마 잘못된 정보들을 걸러낼 수가 있더라구요.
가족들의 잔소리에도 지식으로 차분히 대처하기가 더 쉬워졌습니다.
물론 절대적으로 쉬워진 것은 아니고,
상대적으로 말이죠. 그들도 잘 지치지 않더라구요.
일상으로의 복귀를 꿈꾸시는 분들이 많으실거예요.
아직 치료중이라서 거기까지 생각이 닿지 않으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언젠가 반드시 일상으로 복귀할 날이 오실겁니다.
그 때에 이 글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고, 여러분들이 또 이겨온 길들이 그 다음 분들에게 더 좋은 메세지와 응원으로 찾아가기를 바래봅니다.
힐오(Heal-O) 플랫폼의 운영주체인 주식회사 케어랩스로부터 소정의 원고료를 지원받고 작성한 콘텐츠입니다
※ 본 콘텐츠는 작성자의 실제 경험에 기반한 개인 사례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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