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암 ∙ 경험 공유

#9 환우도 아프지만, 가족들도 사실 아픕니다. 데이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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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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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데이비드입니다.

오늘은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암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 앞에서 환우들이 겪는

아픔과 공포는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저 역시 그 충격 속에서 내 몸 하나 추스르기도 벅찼고,

수술과 항암 치료를 견디는 데 모든 정신을 쏟아부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나니 그때 내가 놓치고 지나갔던

소중한 사람들의 마음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환우를 돌보는 가족들과 간병인들,

그들이 겪는 상처와 트라우마는 의외로 깊고 오래 남더군요.

어느 날,

제가 투병 일기를 음성으로 녹음해 봤습니다.

글로는 다 담기지 않는 감정들을

목소리로 남겨보고 싶어서였죠.

녹음을 마치고 파일이 잘 되었는지 확인하려고

아내에게 잠깐 들려줬는데,

그 순간 아내가 무너지듯이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또 다시 아픈 건 줄 알고 너무 놀랐어…”

라며 눈물을 멈추지 못하더군요.

제가 미리 예전에 썼던 글을 녹음해서

SNS에 올려보려고 했던 거라고 알려줬어야 했는데

미처 들려줄 때에는 그 말을 깜박한 게 화근이었습니다.

그 짧은 순간,

저는 아내가 아직도 그때의 공포를

온전히 품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선고를 받은지 이미 10년이 넘었고,

완치 판정을 받은지도 벌써 3년이 넘었는지만,

아내의 마음 깊은 곳에는

그때의 병원 냄새,

링거 바늘,

수술실 문 앞에서 떨던 기억이

아직도 고스란히 남아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나 때문에 상처받은 사람들은 온전히 치유될 시간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암 선고를 받았을 때부터 그저

“내가 아프니까 가족들도 힘들겠지”

정도로만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다른 환우 가족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환자의 병이 마치 자신의 일처럼 느껴져

잠을 설친 날들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더군요.

보호자들은 환자를 위로하며 눈물을 삼키고,

병실 밖에 나와 몰래 울고,

가족들에게는

“괜찮아”라며 태연한 척을 합니다.

주사바늘에 예민해진 환자의 손을 붙잡으며 같이 긴장하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환자보다 더 숨을 죽입니다.

그러면서도

“네가 더 힘들 텐데 내가 울면 안 되지”라며

자신의 슬픔과 불안을 모른 척합니다.

그 마음속에 쌓인 두려움과 죄책감이

결국에는 트라우마로 남기도 합니다.

저도 뒤늦게야 알았습니다.

내가 병원 침대에 누워 있는 동안,

부모님은 먼 지방에서 한걸음에 달려와

진료실 밖에서 밤새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내는 다니던 직장을 잠시 멈추고 하루 종일 곁에서 간병하며,

집에서는 지친 마음을 달랠 새도 없이 다시 식구들을 챙겼습니다.

친구들은 아무렇지 않은 척 농담을 했지만,

돌아서서 눈시울을 붉혔다는 걸 뒤늦게 알았습니다.

나의 병이 나만의 병이 아니었더군요.

우리가 아픈 동안,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들도 함께 아팠습니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환우들이

자신을 돌보는 사람들을 한 번 더 바라봐 주었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봅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이 최우선이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가족과 간병인이 느끼는 무게를

조금이라도 덜어줄 수 있는 방법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작은 고마움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항암주사실에서 돌아오는 길에

“오늘도 고마워”라는 한마디는,

두 시간 동안 차가운 의자에 앉아

당신을 기다리던 보호자에게 큰 위로가 됩니다.

당신이 견디기 힘든 통증을 호소할 때는

“나도 힘들지만 당신도 힘들다는 거 알아”라는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봐 주세요.

때로는 간단한 안부를 묻는 것만으로도

상대의 마음이 풀리기도 합니다.

또 하나, 보호자에게 숨 쉴 틈을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픈 사람 곁을 지키는 일은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소진이 큽니다.

간병하는 가족에게 잠깐이라도 산책을 다녀오라고 권하거나,

잠을 푹 자도록 배려해 주세요.

“나 혼자 있어도 괜찮아, 잠시 바람 쐬고 와“

라는 말을 들으면

보호자는 죄책감 없이 자신을 돌볼 시간을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도 그 시간 동안 혼자 있어보는 연습을 하며

독립성을 기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서로의 마음을 열어 놓는 연습을 해보세요.

아내와 저는 속마음을 나누고 서로의 상처를 공유하면서

조금씩 치유되었습니다.

환우와 가족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두려움과 슬픔을 나누고 서로의 눈물을 인정하는 것이

오히려 관계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 줍니다.

“네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는 고마움과

“나도 많이 힘들었지만 지금은 괜찮아질 거야”라는

격려를 주고받으며,

우리는 함께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물론, 환우에게

“너보다 가족이 더 힘들다”

라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우리 몸이 가장 힘든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나 하나만큼이나 혹은 그 이상으로

상처받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질 여유를

조금이라도 내보자는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를 위로하는 순간,

아픔은 반으로 줄어들고 사랑은 두 배로 커집니다.

이것이 제가 이 길의 끝에서 얻은 작은 깨달음입니다.

주변에 본인 가족의 암 선고 소식을 듣게되면

저에게 다가와 조언을 구하시는 분들이 종종 있습니다.

그 분들에게는 아픈 건 사실 환우들이니

본인 몸을 본인이 챙길 수 있도록

환우 가족들의 걱정을 환우에게 전이시키지는 말아달라고

당부합니다.

그러나 정작 환우가족분들은

본인이 아픈 것을 드러내고

주변에 도움을 구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만약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 분들에게는 이런 이야기들을 꼭 해 주고 싶었는데,

이런 채널이 생겨서 이야기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서

이제 마음의 숙제를 조금 덜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가족과 간병인들에게도 이 글을 통해 말하고 싶습니다.

여러분 역시 혼자서 견디지 마세요.

힘들다면 울어도 좋고,

주변에 손을 내밀어도 좋습니다.

여러분의 마음도 소중합니다.

환우들이 완치를 향해 나아가는 동안,

여러분도 함께 회복해야 합니다.

환우에게는 당신들의 웃음과 건강한 마음이 큰 힘이 됩니다.

오늘도 병실에서,

혹은 집에서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계신 모든 분들께 이 글을 보냅니다.

우리 모두가 서로의 고통을 알고,

서로의 마음을 품어줄 수 있다면

아픔은 조금 더 견디기 쉬워질 것입니다.

자신의 상처를 애써 외면하지 말고,

사랑하는 이들의 상처도 한 번 더 들여다보는

하루가 되었으면 합니다.


힐오(Heal-O) 플랫폼의 운영주체인 주식회사 케어랩스로부터 소정의 원고료를 지원받고 작성한 콘텐츠입니다

※ 본 콘텐츠는 작성자의 실제 경험에 기반한 개인 사례이며,
의료적 판단이나 치료 결정은 반드시 의료진과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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