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암 ∙ 경험 공유

#9 30살이 넘어도 나는 엄마의 눈물버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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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들보들 쉼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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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암치료를 시작한 지 1년이 다 되어가는 즈음이 되자 병원 복도와 진료실 풍경이 제겐 낯설지 않은 일상이 되었지만, 엄마에게는 아직도 그 모든 과정이 마음 졸이고 눈물짓게 하는 일이라는 걸 실감합니다.

요즘은 혼자 병원에 다닐 때가 더 많지만, 반년 전까지만 해도 항암약물 주사를 맞으러 갈 때면 엄마는 꼭 제 옆에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학교 발표회에 엄마가 빠짐없이 오셨던 것처럼, 병원 진료실 앞 의자에도 엄마가 늘 함께 앉아 계셨어요. 혼자서도 괜찮다고, 엄마는 잠깐 쉬고 오라고 해도 늘 고개를 저으셨죠. 의사 선생님 말씀을 한 마디라도 더 듣기 위해, 혹시 중요한 걸 제가 놓칠까 봐 엄마는 항상 귀를 기울이십니다.

진료실에서 혈액검사 결과를 들을 때마다 긴장되는 엄마의 시선이 느껴져 엄마의 손을 꼭 잡았어요. 몇년 전 진료실에서 백혈구와 호중구 수치가 올해 들어 가장 많이 떨어졌다는 말을 듣는 순간, 엄마의 손끝이 떨리는 게 느껴졌습니다. 300이라니, 그 전에 나왔던 호중구 수치가 3000이었던 걸 생각하면 저도 순간 마음이 철렁했는데, 엄마는 눈시울이 벌써 붉어지셨더군요. 의사 선생님은 백혈구 수치를 올려주는 주사를 맞자고 하셨어요. 주사가 골수를 자극해 통증이 올 수 있다는 설명에 엄마가 다시 한번 저를 바라봤습니다. 저는 괜찮다고, 이까짓거 별거 아닐거라고 웃어 보였지만, 엄마의 표정은 쉽게 풀리지 않았어요.

호중구 수치를 올리는 주사를 처음 맞은 뒤 온몸이 뻐근하고, 밤에는 허리가 욱신거렸지만 차마 엄마에게 말하지 않았어요. 엄마는 제가 아플 때마다 더 아파하시고, 힘들 때마다 눈물을 참지 못하시거든요. 항암치료를 시작한 뒤로 엄마는 저보다 더 자주 눈물을 흘리십니다. 진료실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그리고 아무 일도 없는 평범한 저녁 밥상 앞에서도요. 내가 아파서 엄마를 또 울렸구나, 하는 생각에 미안한 마음이 늘 가득해요.

암 진단을 받았던 그날도 아직 생생합니다. 갑작스런 복통과 체중감소, 그리고 한달 넘게 이어진 설사와 변비 증상에 동네 내과에 갔다가, 큰 병원을 거쳐 결국 암 진단을 받게 됐죠. 진단 결과를 듣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엄마는 꾹꾹 울음을 참으며 크게 울지 않으셨어요. 집에 도착해서야 조용히 제 방 문을 닫고 한참을 우셨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엄마는 늘 강한 척하셨지만, 그날만큼은 저보다 더 무너졌던 것 같아요. 그 뒤로 엄마는 2주에 한 번씩 병원에 같이 다니고, 제가 받는 모든 치료 과정을 함께 지켜보셨습니다.

응급실에서 갑자기 의식을 잃었을 때, 엄마가 얼마나 놀랐을지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이 아픕니다. 그날 엄마가 보였던 새하얀 얼굴과 떨리는 목소리가 지금도 잊히지 않아요. 겨우 정신을 차리고 엄마에게 “엄마, 내가 아파서 미안해요.”라고 말했을 때, 엄마는 또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셨습니다. 그 눈물을 볼 때마다 저는 조금 더 강해져야겠다고 다짐했지만, 동시에 엄마를 아프게 하고 있다는 죄책감도 커져만 갔어요.

치료가 길어지면서, 엄마는 점점 저의 모든 걸 챙기기 시작했습니다. 집 비밀번호, 각종 보험 서류, 그리고 제가 쓰는 모바일 뱅킹 앱까지 모두 엄마가 알게 됐어요. 혹시라도 제가 갑자기 아프거나, 예상치 못한 상황이 생겼을 때 엄마가 모든 걸 처리할 수 있게 하려는 저만의 방식이었습니다. 물론 엄마도 그 이유를 알고 계셨죠. 처음엔 걱정이 너무 많으셔서, 매번 “혹시 무슨 일 생기면…”이라고 말을 꺼내시곤 했어요. 요즘 들어서는 그런 걱정을 조금은 내려놓으신 것 같아 다행이지만, 여전히 엄마의 눈빛에는 걱정이 묻어납니다.

수술을 앞두고 있을 때, 저는 성당에 가서 기도를 많이 하기도 했습니다. 제 기도는 늘 “엄마 옆에서 오래오래 함께할 수 있게 해주세요.”였습니다. 수술이 끝나고 회복실에서 병실에 돌아와 눈을 떴을 때, 눈가가 벌겋게 부은 엄마가 제 손을 꼭 쥐고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순간, ‘내가 엄마를 또 울렸구나’라는 생각에 마음이 아파서 눈물이 났어요.

항암치료 중 부작용이 심해져 새벽에 약을 토하고 힘들어할 때도, 엄마는 제 곁에서 밤새 물수건을 갈아주셨습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엄마가 대신 아팠으면 좋겠다.”고 하셨죠. 저는 그런 엄마를 보며 ‘내가 엄마의 눈물버튼이구나’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됩니다. 삼십이 넘었는데도, 엄마에게는 아직도 작은 아이일 수밖에 없다는 걸 느껴요.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제 생활 습관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면역력이 떨어지지 않도록 식단에 더 신경을 쓰고, 잠을 충분히 자려고 노력해요.

운동도 꾸준히 하려고 노력 중이에요. 처음엔 몸이 무거워서 산책조차 힘들었지만, 엄마가 함께 나가자고 손을 잡아주셔서 조금씩 습관이 되었어요. 동네 공원에서 엄마와 나란히 걷는 시간은 제게도, 엄마에게도 소중한 추억이 되었습니다. 걷다가 힘들면 잠시 앉아 쉬면서, 엄마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꺼내십니다. 어릴 적 제 얘기, 우리 가족의 옛날 이야기, 엄마의 소소한 바람들. 그런 대화를 나눌 때마다, 엄마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또 내가 엄마에게 얼마나 큰 존재인지 새삼 느끼게 돼요.

항암치료 중에도 일상을 이어가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때론 친구들과 짧은 통화를 하며 마음을 다잡아요. 예전처럼 자유롭게 여행을 다니거나 외식을 자주 하진 못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보내는 시간이 오히려 더 소중하다는 걸 알게 됐네요. 엄마는 때때로 “네가 건강해지는 게 내 소원”이라고 말하세요. 저는 그 소원을 꼭 이루고 싶어요.

가끔은 엄마의 눈물이 부담스럽기도 했어요. 내가 아프지 않았다면, 엄마도 이렇게 자주 울지 않았을 텐데 싶어서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엄마의 눈물은 나약함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걸 이해하게 됐습니다. 엄마는 내 슬픔과 아픔을 대신 짊어지고 싶어 하시고, 내가 괜찮다고 하면 가장 먼저 웃으시는 분이니까요. 엄마의 웃음이 오래오래 내 곁에 머물 수 있도록, 앞으로도 건강 관리를 열심히 하고 싶어요.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제 삶은 참 많이 달라졌습니다. 예전엔 당연하게 생각했던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리고 엄마와 보내는 시간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깨닫게 되었어요. 엄마와 함께하는 반나절의 시간, 따뜻한 밥 한 끼, 소소한 대화 하나까지도 모두 감사하게 생각하게 됐습니다.

30살이 넘어도 저는 여전히 엄마의 눈물버튼인가 봐요. 엄마의 그런 사랑이 있기에 저는 다시 웃고, 내일을 꿈꿀 수 있습니다. 언젠가 엄마의 걱정이 눈물이 아닌, 환한 웃음으로만 가득 차길 바라며 이 일기를 마칩니다.


※ 힐오(Heal-O) 플랫폼의 운영주체인 주식회사 케어랩스로부터 소정의 원고료를 지원받고 작성한 콘텐츠입니다.

※ 본 콘텐츠는 작성자의 실제 경험에 기반한 개인 사례이며, 의료적 판단이나 치료 결정은 반드시 의료진과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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