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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엄마! 하고 싶은게 뭐야? 엄마의 버킷리스트, 쌍기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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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기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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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하고 싶은 거 없어?”





어느 날 문득 엄마에게 그렇게 물어봤어요.

그런데 엄마는 “딱히 없어.” 하고 짧게 대답하셨어요.

그 말이 진심일 수도 있고,

아니면 정말 하고 싶은 게 있어도 체력도 안 되고,

지금 내 상황에선 무리라고 생각해서 애써 감추는 걸 수도 있겠지요.

그 말끝에 맴도는 쓸쓸함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습니다.

 



저희는 서울과 지방에 떨어져 지내며 1년에 몇 번 만나지 못했어요.

그러다 갑작스럽게 암 진단을 받고 수술과 항암치료가 이어지면서

엄마는 지금 제 집에서 함께 지내고 계십니다. 벌써 7개월째네요.

처음 몇 개월은 병원과 집만 오가며 시간을 보내느라

어딜 가보는 건 상상도 못했어요.

하지만 항암을 마치고 표적치료제를 복용하면서부터,

엄마에게도 새로운 ‘일상’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엄마의 버킷리스트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엄마는 평생 시골에서만 살아오셨어요.

익숙한 밥상, 익숙한 동네, 아는 사람들.

새로운 걸 시도하거나, 뭘 ‘해보고 싶다’ 말해본 적도 거의 없으셨어요.

그래서인지 서울에 올라오신 뒤 처음 먹어보는 음식,

처음 가보는 장소마다 “세상에, 이런 것도 있네~” 하시며

눈을 동그랗게 뜨시는 엄마를 보며 가슴이 아렸습니다.

‘엄마가 진짜 하고 싶은 건 뭘까?’

엄마 스스로도 몰라서, 그냥 ‘딱히 없어’라고 말하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내가 먼저 엄마를 이끄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제가 엄마와 함께 해본 ‘소소한 버킷리스트’들을 정리해봤어요.

 

 

<함께 시도해본 엄마의 첫 경험들>

1. 예쁜 카페 가기

화려한 대형 베이커리 카페에 갔었는데,

“세상에, 평일인데도 사람이 이렇게 많아?” 하시며 깜짝 놀라셨어요.

조용한 공간에서 따뜻한 차 마시며 보내는 그 시간

이엄마에게 작은 여행처럼 느껴졌던 것 같아요.

 

2. 공연 관람하기
영화는 몇 번 보셨지만, 공연은 처음이라고 하셔서

소극장 뮤지컬 <빨래>를 예매했어요.

엄마가 정말 재미있어하셨고, 공연 내내 웃음소리가 났어요.

이후 다른 공연도 예매해봤지만 항암 중 피로가 겹쳐 아쉽게 졸기도 하셨죠.

그래도 엄마 인생의 ‘첫 공연’은 기억에 오래 남으셨으면 좋겠어요.

 

3. 손톱 관리받기

발톱에 피멍이 들고 스스로 관리가 어려워지면서

근처 네일샵에서 손·발 관리와 투명 매니큐어까지 해드렸어요.

그날 이후 엄마가 스스로 매니큐어를 사와 바르실 정도로

작은 변화지만 기분 전환이 되셨던 것 같아요.

 

4. 마사지 받기

어느 날 병원 다녀오는 길에 엄마가 발이 너무 아프다고 하셨어요.

“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 같아…” 그 말이 마음에 남았어요.

처음엔 발마사지를 해드릴까 하다가, 

통증 관리까지 가능한 곳을 찾게 됐고 결국 10회 이용권을 끊었습니다.

마사지샵은 집 근처라 이동에 무리는 없었고, 
오히려 엄마에겐 외출할 ‘목적지’가 생겼다는 사실이 활기가 된 듯했어요.

마사지 받고 오신 날에는 얼굴빛도 좋아 보이고, 

컨디션도 훨씬 안정되어 보였습니다.

 

5. 화분 키우기

엄마는 원래 식물을 무척 좋아하세요.

토마토 모종 하나도 애지중지 키우시는데,

서울에선 심을 곳도 없고 흙도 없어서 더 무료하셨을 텐데

그걸 제가 미처 생각 못한 게 미안하더라고요.

조금 더 빨리 큰 화분을 사올 걸, 그게 두고두고 아쉬웠어요.

 

 

<조금 더 천천히, 하지만 깊에 할 수 있는 일들>

1. 컬러링북 채색하기

시니어용 꽃 컬러링북을 사드렸는데

처음엔 시큰둥하시다가 어느 날 집중해서 하나를 시작하시더니

며칠 만에 한 권을 뚝딱 채워버리셨어요.

손을 움직이며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이 꽤 즐거우셨나 봐요.

 

2. 뜨개질

어릴 때 소파 커버와 쿠션을 엄마가 손수 뜨개질한 기억이 있어요.
예전처럼 손에 힘이 있진 않지만,

작은 가방 키트를 드렸더니 이틀 만에 완성하셨고

제가 메고 다닌다고 하니 더 뿌듯해하셨어요.

 

3. 아로마 향초 만들기

향기 자극은 우울감과 스트레스를 낮추는 데 좋다고 해서

엄마와 함께 향초를 만들어보려고 해요.

재료도 간단하고, 결과물도 기분 좋고.

이건 이제 막 시도해보려는 리스트 중 하나랍니다.

 

4. 하루 한 줄 일기
가능할까 싶지만, 일기장을 선물하고

“엄마, 한 줄만 써보자~” 하고 권해드릴 생각이에요.

기록이 쌓이면 나중엔 큰 선물이 되겠지요.

 

5. 엄마의 인생 자서전 쓰기

엄마가 직접 쓰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내가 들은 엄마의 이야기를, 하루하루 정리해 글로 옮기는 것도

우리 가족의 역사가 되겠지요.

‘지금 이 순간, 기록해두지 않으면 잊히는 것들’

그걸 담고 싶습니다.

 

 

엄마의 진짜 소원은,

돌아보면, 제가 엄마에게 해드렸던 것들은

거창한 버킷리스트라기보다는

“한 번도 해보지 못했던 사소한 처음들”이었어요.

젊은 사람들처럼

하고 싶은 걸 망설임 없이 말하고

검색해서 혼자라도 도전해보는 삶은

엄마에게는 너무 낯선 이야기일지 모릅니다.

그래서 엄마는 늘 “딱히 없어.”라고 말하셨던 걸지도요.

 



하지만 전 알아요.

엄마의 가장 깊은 바람은 결국,

‘다시 가족들과 함께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라는 걸요.

다 나아서, 함께 여행도 가고,

손주들이랑 시장도 다니고,

딸이랑 손잡고 산책도 할 수 있는 그런 날.

그게 엄마의 진짜 소원이겠죠.

 


지금은 제가 대신 리스트를 만들고,

새로운 것을 하나하나 시도하고 있지만

언젠가 진심으로,

“엄마, 하고 싶은 거 생겼어?”

하고 물었을 때

“응, 하나 있어.”

하고 웃으시는 그날이 오기를 기다립니다.

저는 지금 엄마의 버킷리스트를 찾아가는 중입니다


※ 힐오(Heal-O) 플랫폼의 운영주체인 주식회사 케어랩스로부터 소정의 원고료를 지원받고 작성한 콘텐츠입니다.

※ 본 콘텐츠는 작성자의 실제 경험에 기반한 개인 사례이며, 의료적 판단이나 치료 결정은 반드시 의료진과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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