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암 진단을 받은 후, 가장 힘든 사람은 당연히 엄마였습니다. 하지만 가족들의 슬픔과 부담도 결코 작지 않았습니다. 암 진단부터 수술, 항암, 또 수술, 주기적인 진료와 일상까지 함께하면서 주 보호자가 되어버린 저 역시, 슬픔과 힘듦이 동시에 몰려왔습니다.
엄마가 집으로 오신 지 9개월 정도 되었고, 그중 약 7개월을 저희 집에서 함께 지내셨어요. 그 전에도 남편은 제게 “너, 육아 번아웃 온 것 같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10년간 육아를 하면서 ‘나’라는 사람은 사라지고, 해야 할 일과 귀찮음 사이에서 허우적대던 시기였거든요. 그런데 엄마를 집으로 모시게 되면서, 어찌어찌 버티던 삶이 6개월쯤 지나 터져버린 기분이었습니다.
6개월 동안 저는 매 순간 엄마 상태를 체크하고, 하루 세 끼를 챙기고, 병원 스케줄을 관리하며, 병원에서는 긴 기다림을 견뎌야 했습니다. 게다가 병원 시간과 아이들 등하교 시간을 조율하는 과정까지 더해지면서 개인적으로 큰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 같아요. 물론 혼자였다면 여기까지 버티지도 못했을 겁니다. 동생네가 함께 도와주었기에 아이들을 돌볼 사람이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문제는 엄마가 결혼 전 잠시 서울에서 살아본 적이 있을 뿐, 지금까지 서울에서 거주해본 적이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낯선 환경과 아픔 때문에 혼자 외출하기를 꺼리셨죠. 결국 매 순간 제가 함께 외출해야 했고, 볼일을 보다가도 점심 시간이 되면 집으로 돌아와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스트레스가 쌓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그 마음을 친구나 동생과 이야기하며 조금씩 덜어낼 수 있었습니다. 동시에 큰 죄책감도 생기더군요. “엄마가 아프신데, 나중에 후회하지 않도록 잘해드려야 한다”는 생각과, 현실 속에서 스트레스가 쌓이는 제 모습이 계속 부딪쳤습니다.
엄마는 오랜 서울살이와 낯선 환경에서 오는 답답함, 그리고 할 수 있는 것의 한계 때문에 본가로 돌아가고 싶어 하셨습니다. 주사 항암제가 끝나고 표적치료제를 진행하면서 본가로 내려가셨고, 이후 대략 2주 간격으로 저희 집을 방문하며 병원 동행을 하고 있지만, 예전처럼 매일 함께해야 하는 부담은 줄어 스트레스도 낮아진 것 같습니다.
암 환자는 당연히 아프고, 긴 싸움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가족도 지치고 상처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너무 죄책감을 갖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마음으로 글을 남깁니다
<번아웃을 막는 간병 스트레스 관리 방법>
간병은 단거리 경주가 아닌, 모두가 함께 뛰는 장기전입니다. 환자를 돌보는 보호자 역시 자신의 몸과 마음을 챙겨야 합니다.
1. 완벽하게 하려 하지 않기
엄마가 집에 계시다 보니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몰아붙였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병원을 제가 계속 함께 다녔기에, 다른 가족에게 동행을 부탁하기가 망설여졌어요. 엄마도 병원을 자주 가시긴 했지만, 제가 주도적으로 모시고 다녔기 때문에 건물 위치나 순서가 익숙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도 당연히 헷갈리고 힘들거라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간병은 장기전입니다. 모든 걸 혼자 완벽하게 하려 하기보다, 우선순위를 나누고 ‘할 수 있는 만큼’ 하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환자에게 중요한 것은 완벽함이 아니라, 곁에 함께 있다는 사실일테니깐요.
2. 내 시간을 확보하기
저의 일과는 아침에 엄마와 아이들 식사 준비, 아이들 등교, 집 정리와 청소, 점심 준비, 업무와 개인적인 할일, 하교 후 아이들 케어, 저녁식사로 반복됩니다. 이렇게 반복되다 보니,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루 중 단 한 번이라도 나를 위한 시간을 정했습니다. 30분~1시간이라도 산책을 하거나, 커피를 마시며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숨통이 트였습니다. 가족이 잠시 자리를 비워도 환자가 무너지지 않는다는 걸 믿는 것이 중요합니다.
3. 도움을 나누기
어떤 글에서 “외동은 안 된다”는 말을 본 적이 있습니다. 부모님을 혼자 케어해야 하는 외동 자녀의 고충을 이야기하는 글이었는데, 그 마음이 충분히 이해되었습니다. 저는 남편, 동생, 제부와 함께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힘이 되었어요.
때로는 도움을 청하고 모든 짐을 혼자 짊어지려고 하지 않고 함께 드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됩니다. 엄마 입장에서도 마음의 부담이 덜 느껴질 거예요.
4. 감정을 표현하기
엄마가 아프고 나서 만나는 지인, 친척들이 저를 볼 때마다 “니가 고생이 많다.”, “니가 힘들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처음엔 정말 괜찮아서 괜찮다고 했어요. 당연히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한다고 생각했으니깐요. 그런데 시간이 길어질수록 스트레스는 자연스럽게 쌓이더군요.
그래서 친구에게 하루 있었던 일을 솔직히 털어놓거나, “정말 힘들었어”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글로 기록하거나, 전문 상담을 받는 것도 좋을듯 합니다. 중요한 것은 감정을 억누르지 않는 것입니다.
저의 번아웃은 아직 완전히 해결되진 않았지만, 삶이 점차 안정기를 찾아가고 있습니다. 저 역시 활력을 되찾기 위해 운동도 시작해보려 합니다.
간병은 환자만의 싸움이 아닙니다. 가족도 함께 지치고, 함께 아프고, 또 함께 일어섭니다. 그래서 기억하고 싶습니다. 가족도 하나의 환자라는 사실을. 그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서로를 지켜낼 힘이 생깁니다.
※ 힐오(Heal-O) 플랫폼의 운영주체인 주식회사 케어랩스로부터 소정의 원고료를 지원받고 작성한 콘텐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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