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상선암 ∙ 경험 공유

#6 수술 후 변하는 것 –벚꽃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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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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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이 군대 얘기, 여자들이 출산 얘기 할 때 암 환자는 수술 얘기를 합니다. 제가 조직검사 결과를 확인하던 날, 한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막연하게 불안해하다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세침흡인검사에서 5단계(Suspicious for malignancy)의 결과가 나온 이상, 수술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갑상선내분비외과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저는 환자로서 전화를 걸었지만, 환자와 의사의 두 얼굴을 동시에 가진 묘한 기분이었습니다. 수술 일정을 잡고 나니 기분은 한결 나아졌습니다. 공복 상태로 대기하는 시간이 길어지는 것은 조금 힘들었습니다. 채혈은 견딜 만했는데, CT 촬영에서는 뜨거운 조영제가 몸을 관통하며 불쾌한 향까지 내뿜기에, 왜 환자들이 이 과정을 두려워하고 때론 구토하기까지 하는지 이해가 되었습니다. 저는 공복 상태로 오래 대기하는 검사들은 꼭 필요한 경우에만 시행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수술 방식은 고전적인 절개방식을 택했습니다. 인턴 시절 수술방에서 보았던 경험에 비추어, 절개방식이 목에 흉을 남길 수는 있으나 여러모로 깔끔하고 부작용이 적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로봇을 사용해서 수술이 절개방식보다 훨씬 시간이 많이 걸리고 있는 상황들을 보면서, 흉이 조금 남더라도 단순하고 효율적인 수술법이 낫다는 자체 결론을 내렸습니다. 요즘은 로봇수술이 많이 보편화되어 로봇수술도 빠르고 깔끔하게 하시는 외과 의사분들이 많이 늘었을 것 같긴 하지만요. 원래 내과 의사는 다른 의사를 잘 안 믿습니다.

 

남편은 집에서 아이를 돌봐야 해서 저는 보호자가 없는 간호 간병 병동으로 입원했습니다. 세면도구, 로션, 물, 빨대, 옷가지, 가습기, 노트북, 충전기 정도를 챙겼습니다. 수술 당일, 양갈래로 머리를 땋고 수술실에 들어갔습니다. 수술방은 사실 그렇게 즐거운 공간은 아닙니다. 모든 의료진이 각자의 역할로 불행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공간이지요. 3년 전 딸아이의 심박수가 떨어져 응급 제왕절개를 할 때에도, 마취 직전까지 "아기가 살아서 나오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번엔 무슨 기도를 해야 할까 생각했지만 막상 마취가 시작되자 저도 모르게 "아.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기도의 이유는 사랑하는 가족, 그리고 평생의 꿈인 의사로서 살아갈 수 있었던 순간들이 떠올랐기 때문일 것입니다.

 

눈을 떠보니 회복실이었습니다. 깨어났을 때 느껴지는 첫 느낌은 인생의 새로운 챕터가 열린 기분이었습니다. 마취에서 깨어난 환자들이 자꾸 말을 거는 것이 의료진에게 얼마나 귀찮은지를 알고 있었지만, 깨어났다는 사실은 알리고 싶어 부지런히 눈만 깜빡거렸습니다. 병실에 옮겨질 즈음 두통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는 수술 중 목을 뒤로 젖힌채 유지한 자세 때문으로 추정되었습니다. 하지만 점점 머리가 깨질듯한 고통이 밀려왔고, 간호사님이 서둘러 얼음팩과 진통제를 준비해주셨습니다. 목소리가 나온다는 것을 확인하고 안도했습니다. 수술이 목소리를 만드는 신경 근처에서 이뤄졌기 때문입니다. 손과 발이 저리기 시작했는데, 이는 부갑상선의 혈액순환 장애로 인한 증상일 수 있었습니다. 물을 마시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고, 자꾸 사례가 들렸습니다. 저는 제 몸과 수술에 대한 이해는 갖추고 있었지만, 스스로 처방이나 처치는 할 수 없는 노릇이었기에 무력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수액으로 연결된 폴대를 끌고 다녀야 하고, 옷을 갈아입거나 샤워하는 것조차 버거웠기에, 수술전에 손쉽게 할 수 있는 일들이 모두 어려워 졌다는 사실이 조금 우울했습니다. 하루 종일 금식을 한 터라 배가 너무 고파서 사실 몰래 가져간 쿠키 하나를 먹었지만, 따라 하시면 안 됩니다.

 

수술 직후에는 움직이기가 힘들어서 느끼지 못했는데, 오후가 되니 불편한 부분이 특정되기 시작했습니다. 목은 뜨겁고 딱딱한 느낌은 줄어들었지만, 피부가 간지럽고 당기는 느낌은 심해졌습니다. 손발 저림은 줄어들었지만 남아있었습니다. 물을 마실 때는 사레가 자주 들리지만, 고개를 숙이고 물을 마시면 사레가 덜 들린다는 것을 시간이 꽤 지나서야 깨달았습니다. 가장 불편한 점은 목소리가 작게 나오고 고음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는데, 이 증상은 6개월 이상 지속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저는 학창시절 합창단 활동을 했습니다. 입단 테스트 시 소프라노, 메조소프라노, 알토로 파트가 나뉘게 되는데, 다들 내심 가장 돋보이는 소프라노가 되고 싶어서 테스트 내내 묘한 긴장감이 흐릅니다. 퇴근길 차에서 혼자 좋아하던 합창을 불러보니 역시 소프라노는 무리였습니다. 수술로 인해 음역대가 변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메조나 알토도 중요해, 같은 진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에요. 제가 내과인 것을 자랑스러워하듯이, 소프라노는 저의 오랜 자랑이었으니까요.

 

사실 저는 주목받는 것을 힘들어하는 극 내향인이예요. 하지만 막상 글을 세상에 선보이는 일들을 몇 번 하고 나니, 저와 비슷한 사람들이 제 생각에 공감하며 '우리는 다른 인생을 살고 있지만,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고 말해주어서 글을 쓰길 잘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알토가 되어본 적은 없지만, 작가가 되고 난 후의 세상도 멋진 걸 보면, 알토가 되고 난 후의 세상도 좀 더 멋질 수도 있지 않을까요. 해보지 않고서야 알 수가 없으니 말입니다.

 

돌아보면 모든 경험은 저를 성숙하게 했습니다. 의사인 제가 질병과 수술을 직접 경험하고, 몸이 아픈 상태를 체험하면서 환자의 입장에서 의료를 다시 바라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경험 덕분에, 환자의 아픔, 두려움, 불안과 우울까지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하루의 삶을 온전히 즐기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인생은 예상치 못한 일들로 가득 차 있지만, 중요한 것은 그 순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자신만의 방식과 속도로 병에게 작별을 고하는 것, 그리고 다시 일어서서 걸어가는 것이 결국, 더 깊은 인생의 노래가 되어, 우리 모두를 더 아름답고 건강하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 힐오(Heal-O) 플랫폼의 운영주체인 주식회사 케어랩스로부터 소정의 원고료를 지원받고 작성한 콘텐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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