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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방사성? 방사선? 치료 –벚꽃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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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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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 후 환자에게 방사성 요오드 치료를 받는 게 좋겠다고 말하면 거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수술로써 치료가 끝났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방사성 요오드란 흔히 음식에서 섭취할 수 있는 일반 요오드와 달리 방사능이 있는 요오드로써, 물약이나 알약 형태로 복용합니다. 일반 요오드와 경쟁적으로 갑상선에 흡수되어 수술 후 남아있는 갑상선 조직을 파괴합니다. 요오드 치료는 비교적 안전한 치료이지만 침샘 손상, 눈물관 폐쇄, 이차성 암 발생 등 합병증이 적게나마 보고되었기 때문에, 저 위험군에서는 수술 후 방사성 요오드 치료를 선택적으로 고려해야 합니다.

 

제가 가장 큰 성취감을 느낀 수업은 수학이나 과학이 아닌, 중학교 2학년 체육수업이었습니다. 기억에 남는 실기 항목은 이어달리기였습니다. 네 명씩 조편성이 되었고, 기회는 각 조별로 세 번씩 있었습니다. 우리 조는 첫 번째에도 두 번째에도 목표시간 내에 완주하지 못했어요. 이어달리기에서 중요한 것은 아무래도 바통터치입니다. 조금이라도 버벅대면 바로 목표시간을 넘어갔습니다.

 

마지막 시도를 남기고 레이스에 서있었습니다. 다른 조 친구들은 구령대 위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세 번째 주자였기 때문에, 첫 주자가 두 번째 주자에게 바통을 넘겨주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전혀 버벅거림이 없고 한 사람이 뛰듯이 전달되어서, 속으로 '그렇지!'하고 외쳤습니다. 두 번째 주자가 제게 바통을 넘길 때도 실수 없이 부드럽게 전달되었습니다. 마지막 친구에게 달려가면서 기분이 너무 좋았어요. 시원한 바람이 온 힘 다해 몸을 밀어주고 있었습니다. 바통을 넘기면서 다음 주자에게 크게 외쳤습니다.

 

"이번엔 될 거 같아!"

 

순간 바통을 이어받은 친구의 눈빛이 변했습니다. 마지막 친구는 바통을 꽉 쥐고 전력 질주를 해주었습니다. 우리는 목표 시간 내에 완주했고, 얼싸안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흐뭇하게 바라보던 선생님의 표정을 기억합니다.

 

국가고시나 전문의 시험처럼 잘못되면 큰일이 나는 시험을 끝내고 났을 때는, 의외로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습니다. 안도감이야 당연히 들었지만, 긴장이 풀려서인지 묘하게 허무하고 우울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잘못돼도 큰 상관은 없는 작은 도전들은, 많으면 많을수록 저를 행복하게 만들었습니다. 삶에서 작은 도전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중학교 체육수업의 이어달리기를 떠올렸습니다. 그때 품었던 의구심, 떨림, 함성을 기억합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요오드 치료라는 바통을 이어받아야 한다면, 바통을 꽉 쥐고 전력 질주해 주었으면 좋겠어요. 레이스의 끝에서 저는 마음으로나마 당신을 얼싸안아 줄 것입니다.

 

방사성과 방사선의 발음이 유사하기 때문에 자주 혼동되지만, 두 치료는 엄연히 다른 치료입니다. 방사성 요오드를 섭취해서 치료하는 방법을 방사성 요오드 치료라고 하고, 고에너지의 방사선을 기계로 몸에 조사해서 치료하는 방법을 외부 방사선 치료라고 합니다. 외부 방사선 치료는 수술이 불가능하거나, 방사성 요오드 섭취능이 없거나, 분화도가 나쁜 암이거나, 주요 기관(뇌, 척추, 골반, 임파선 등)에 전이가 있을 때 고려합니다. 갑상선 암뿐만 아니라 많은 다른 암에서 치료로 사용하는 방사선 치료가 바로 이 외부 방사선 조사 치료예요. 치료의 효과는 종양 부하(Tumor burden)에 따라 천차만별입니다. 부작용은 조사 부위에 따라 다른데, 갑상선에 조사하는 경우 연하곤란, 식도 협착, 후두 협착, 부종 등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고백하건대, 저는 사실 혐오하는 것이 많은 사람입니다. 직장에서 서로 미루던 일이 결국 나에게 왔을 때, 오래 볼 사이가 아니라고 차문 밖으로 욕을 하는 운전자를 볼 때, 금전적인 이유나 개인적인 욕심으로 다른 사람에게 사기 치는 사람들을 만날 때, 사람이 싫다 못해 세상이 꼴 보기 싫어집니다. 처음에는 슬픔 정도였던 것 같은데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언제부터인가 혐오하게 되었습니다. 다만 혐오를 표현하지는 못해서, 서로 미루던 일은 그냥 제가 하기도 하고, 욕하는 운전자를 보지 못한 체하고, 사기 치는 사람에게는 눈치 못 챈 척 빠져나오기도 했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꽤 나이스 했을지도 모르겠지만, 마음 깊은 곳에는 상대방에 대한 경멸감, 배신감, 회피 본능이 자라나고 있었습니다.

 

최근에 딸아이를 관찰하다가 알게 된 것인데, 아기에게는 혐오라는 감정이 없습니다. 부끄러움, 무서움 등의 감정은 있지만, 이것은 혐오와 확실히 구분되는 감정입니다. 혐오하는 것이 없어서, 앞으로 혐오하게 되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불안감도 없습니다. 놀이터에서 처음 보는 언니를 따라다니고, 부딪혀서 다치더라도 언제 그랬냐는 듯 다음 놀이기구로 달려갑니다. 보통의 어른이 상대방에게 실망했을 때 지어지는 지긋지긋하다는 듯한 표정과 말투가 전혀 없습니다. 저는 늘 딸에게 엄마처럼 바르게 이야기해야지, 엄마처럼 조용히 기다려야지 하며 예의라는 것을 가르쳤는데, 사실 제가 딸아이처럼 두려워하지 말고, 아기처럼 혐오하는 마음 없이 세상을 대해야 했던 것은 아닐까요.

 

혐오의 이유는 자기방어일 것입니다. 나에게 피해가 될 것 같은 상황, 나에게 피해를 줄 것 같은 사람을 마주할 때 혐오라는 경험의 산물이 수면 위로 떠오르며 스스로를 보호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혐오라는 것을 모르는 어린아이가, 때론 어른보다 더욱 단단하고 건강해 보입니다. 방사선 치료는 수술로 암을 완전히 제거할 수 없을 때 고려하는 2차 치료이기 때문에, 많은 환자가 힘들어합니다. 때로는 본인의 처지나 치료 과정, 의료기관에 대한 혐오감을 표현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우리의 혐오감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는 아기와 달리 너무 많은 시간을 살았고 너무 많은 피해를 당했고 너무 많은 혐오대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아기처럼 편견 없고 싶고 두려워하지 않고 싶고 혐오를 모르고 싶어요. 그편이 훨씬 즐겁고 행복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싫어하는 말투를 들을 때, 싫어하는 유형의 사람이나 상황을 마주할 때- 혐오를 모르는 아기의 맑디맑은 표정을 떠올리며, 더 이상 내 마음속의 혐오 나무에 물을 주지 않을 것을 다짐해 봅니다. 대신 아기가 선물해 준 도전과 희망, 기쁨의 씨앗을 심습니다. 오늘도, 내일도 무럭무럭 자라도록.

 

* 힐오(Heal-O) 플랫폼의 운영주체인 주식회사 케어랩스로부터 소정의 원고료를 지원받고 작성한 콘텐츠입니다.

** 본 콘텐츠는 의학적 이해를 돕기 위해 제공되며, 의료적 판단이나 치료 결정은 반드시 의료진과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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