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암 경험자입니다.
조선일보 기자였던 2008년 9월 대장암(S결장암) 3기 진단을 받았습니다. 수술과 항암 치료를 받았지만 항암 치료는 병원에서 정한 횟수의 3분의 1만 받았습니다. 2년 4개월 간 회사를 쉬면서 암 투병을 했습니다. 투병이라기 보다는 암이 재발하지 않도록 내 몸의 면역력을 높이는 암 관리 계획을 세워 철저하게 지켰습니다. 어느덧 11년 4개월이 흘렀습니다. 그 사이 암 재발은 없었고 비슷한 나이의 친구 지인들과 비교하면 건강한 편에 속합니다.
돌이켜 보면 제 삶은 ‘암 이전’과 ‘암 이후’로 나뉩니다. 팔팔하던 20대에 세웠던 삶의 목표를 향해 옆도 뒤도 보지 않고 돌진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일에 대한 열정과 성과에 대한 만족감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내 몸 관리에는 소홀했습니다. 암을 계기로 내 몸의 소중함을 깨달았지요. ‘암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2013년에 쓴 책의 제목을 ‘나는 암이 고맙다’로 정한 것은 암을 통해 달라진 내 삶의 모습이 그만큼 좋았다는 증거입니다. 암 진단 후 5년이 지나지 않아 완치 판정을 받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감히 ‘나는 암이 고맙다’고 대놓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다시 생각해도 나는 암이 고맙습니다. 연세대 김주환 교수의 책 한 대목을 인용하려고 합니다. ‘회복 탄력성 - 시련을 행운으로 바꾸는 마음 근력의 힘’에서 김 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회복 탄력성은 자신에게 닥치는 온갖 역경과 어려움을 오히려 도약의 발판을 삼는 힘이다. 성공은 어려움이나 실패가 없는 상태가 아니라 역경과 시련을 극복해낸 상태를 말한다. 떨어져본 사람만이 어디로 올라가야 하는지 그 방향을 알고 추락해본 사람만이 다시 튀어 올라가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듯이 바닥을 쳐본 사람만이 더욱 높게 날아오를 힘을 갖게 된다. 이것이 바로 회복 탄력성의 비밀이다."
암은 누구에게나 큰 역경이고 고난입니다. 어떤 사람은 암을 계기로 삶이 달라지고 행복해졌다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안타깝게도 암 때문에 삶이 고통스러워졌습니다. 그 차이를 만드는 건 뭘까요? 결국 암 경험자 자신이 선택입니다. 김주환 교수는 역경과 어려움을 딛고 일어서는 사람(회복 탄력성이 높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비율이 1대2이며 회복 탄력성은 체계적인 노력과 훈련을 통해 키워갈 수 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등장하는 단어가 마음 근력 곧 마음 근육의 힘입니다. 저는 강의를 하거나 글을 쓸 때 ‘몸맘 건강’이라는 단어를 쓰는데 몸 건강과 마음 건강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몸과 마음 어느 하나가 무너지면 다른 쪽도 함께 무너집니다. 암 경험자를 위한 코칭 상담 강의를 할 때마다 마음 건강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면역력의 필수 요소이기 때입니다.
동호회에서 만난 수많은 암 경험자들의 얘기를 들어봐도 암을 계기로 삶이 더 풍요로워졌고 그래서 암이 고맙다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암 덕분에 잊고 살았던 자기 자신을 돌보게 되고 사랑하게 됐다고 합니다. 하루 하루가 기대되고 행복해졌다는군요. 이제 막 암 진단을 받았거나 힘겹게 치료를 받는 분들은 선뜻 받아 들이기 힘들겠지만 “암 덕분에 얻은 게 많다"는 건 거짓이 아닙니다. “암 덕분에" 보다 더 회복 탄력성을 잘 설명해줄 수 있는 표현이 있을까요?
암 진단을 받으면 우리는 대부분 큰 충격을 받습니다. ‘암=죽음’이라는 공식을 떠올립니다. 항암 같은 표준 치료로 인한 부작용도 각오해야 합니다. 현실 부정 자기 비판 좌절의 부정적인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대로 삶 자체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킨 분도 적지 않습니다. 암을 계기로 삶이 긍정적으로 바뀐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김주환 교수가 주장하듯 체계적인 노력이나 훈련을 통해 마음 근력을 키운 사람들입니다. 암 수술 직후부터 지금까지 제가 꾸준히 실천하고 있는 방법은 김 교수의 마음 근력 키우기와 다르지 않습니다. 편지나 일기를 통해 감사하는 마음 갖기, 자기 용서, 자기 수용, 자기 존중, 타인 용서, 타인 수용, 타인 존중, 명상, 규칙적인 운동을 습관화 하는 것입니다. 뇌의 전전두엽을 활성화 시키고 긍정적인 정서를 유지해서 ‘진정한 행복감’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면 회복 탄력성은 키울 수 있다고 김 교수는 말합니다. 여기에 몸에 좋은 음식 먹기, 충분한 수면 등 건강에 유익한 생활 습관을 유지하는 것이 암 경험자들의 면역력을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여기에 웃음 하나를 더 보태면 마음 근력을 키우는 강력한 수단을 갖추게 됩니다. 이렇게 좋은 방법이 있는데도 그 진가를 모르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암 때문에 생기는 부정적인 생각 대신 암을 계기로 우리 인생을 새롭게 긍정적으로 바꿀 회복 탄력성을 믿어보자고 이 순간 힘겹게 암과 싸우는 분들께 말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