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암 ∙ 경험 공유

#1. 치료 후 마음의 벽 넘기, 타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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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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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6년차 호르몬양성 유방암 경험자 타샤입니다.

 

수술, 항암, 방사선 치료까지 힘들었던 표준 치료의 여정을 무사히 마쳤지만, 이후에도 달라진 몸과 마음에 적응하는 건 쉽지 않았어요.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과정의 이야기를 들려 드리려구요.

 

표준 치료가 끝난 뒤에는 제가 누릴 수 있는 것에 감사하며 지냈어요. 항암 후 다시 자란 머리는 아톰처럼 치솟은 곱슬이었지만, 머리카락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니까요. 소소한 불편함들(관절통과 피로감, 우울감 등)은 초반에는 힘들었지만 받아들여야하는 걸 아니까, 차츰 적응해가면서요. 다만 이따금 이전과 달라진 일상으로 조금 당황스럽고, 위축되는 경우가 있죠. 저에게는 장거리 운전이 그랬어요.

 

치료 전에는 체력인지, 깡인지 알 수 없지만 무한 에너자이져였거든요. 회사일에, 육아에, 자기계발 등 하루 종일 분주히 돌아다녀도 괜찮을만큼요. 심지어 고속도로 운전에 한 번 발을 들인 이후로는, 당일 왕복 500키로도 가능했어요. 당일치기로 지방에 가서 신나게 놀고 저녁 늦게 와도 끄떡 없었는데.

 

그런데 이제는 언제 체력이 0으로 곤두박질칠지 모르니(일명 암성 피로), 장거리 운전은 겁났어요. 안하면 된다고 쿨하게 넘겨보려고도 했는데. 왠지 평범했던 일상을 빼앗긴 기분이 아쉽고, 조금은 서럽더라구요.

 

그럴 일이 없으면 생각이 안났을 텐데, 때마침 왕복 5시간 거리, 지방에 다녀올 일이 생겼어요. 예전 같으면 아무것도 아닌 일인데 걱정으로 마음은 심난해지고.

 

직접 가지 않고 할 방법은 없는지(꼭 가야하는 상황), 대중교통은 없는지(있지만 교통이 매우 불편함), 남편에게 부탁해볼까?(휴가를 내기 어려움) 이런저런 궁리를 해보지만 방법이 없더라구요.

 

돌이켜보면 조심해서 살살 다녀왔으면 되는데, 트리플 에이형 소심함에 초보 암경험자가 더해져서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어요. 운전 중에 갑자기 그 분(암성피로)이 오시면 어쩌지? 쉬어도 회복이 안 되면? 상행길은 많이 막힐 텐데 괜찮을까? 심지어 타이어를 교체한지 오래됐는데 갑자기 펑크가 나진 않겠지? 등등

 

조금은 과한 걱정까지 쏟아지면서 머릿속은 뒤죽박죽. 거기서 생각을 멈추지 못하고 급기야 ‘이제 운전도 하나 못하는 비루한 몸뚱이가 됐구나.’ 한탄이 나오더라구요. 이런 걱정을 하는 상황, 쿨하게 넘기지 못하고 걱정하는 소심한 나, 이 때쯤 어김없이 등장하는 ‘암에만 안 걸렸어도...’

 

이렇게 안절부절 고민이 최정점에 달할 즈음, 머릿속이 한 순간 깨끗해졌어요.

‘그래. 일단 한 번 해보자. 뭐 어떻게든 되겠지.’

 

그렇게 무수한 고민과 걱정 끝에 오랜만의 나들이. 간만에 질주하며 달리는 고속도로 운전은 설렘과 신남 그 자체였어요. 라디오를 틀고 노래도 흥얼 거리고, 휴게소에서 잠시 커피도 한 잔 하고, 푸릇하다 못해 울창한 여름 느낌이 가득한 풍경도 구경하구요.

‘이렇게 좋은 걸, 그냥 해보면 될 걸.’

 

치료로 몸이 직접적인 충격을 받았지만, 마음에도 영향이 컸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어요. 암을 만난 뒤로 해보고 싶은 일은 마음껏 도전하면서 즐겁게 살려고 노력중이지만, 은연중에 예전처럼 할 수 없을 거라는 한계를 만들고, 그 테두리 안에 머물려고 했던 건 아닌지.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걱정, 스스로에 대한 편견과 선긋기까지.

 

비단 운전 뿐 아니라, 직장 복귀를 앞두고 있던 시점이라 월급만큼 1인분을 할 수 있을지, 다시 예전처럼 바쁘고 힘든 워킹맘의 삶을 견딜 수 있을지, 그러다가 다시 건강을 잃는 건 아닌지 온통 걱정이 가득했거든요.

 

치료 때문에 체력이 떨어져서, 암성 피로 때문이라고 원망했지만, 가장 중요한 건 제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물론 무리하지 않도록 몸을 잘 살펴야하는 건 맞지만, 그것 때문에 겁먹고 시도조차 하지 않을 이유는 없는데 말이죠. 해보지도 않고서는, 일상을 빼앗겼다고, 삶의 범위가 쪼그라들었다고 투덜대던 모습. 익숙한 공간과 상황을 벗어나니 감추려던, 숨고 싶던 마음을 솔직하게 바라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제는 일단은 해보려고 해요. 조금씩 선을 넓히면서, 어디까지 감당할 수 있는지 확인하면서요.

‘앗, 이건 아니네. 철수!’ 혹은 ‘어랏, 되네~ 계속 고고’

이렇게 전진과 멈춤을 반복하면서 일상을 이어가면 되니까요. 물론 그러다가 너무 힘들면 바로 드러누워 SOS를 치구요.

 

하행길에 큰 깨달음을 얻었는데, 상행길에는 현실에 맞닥뜨렸어요. 정신없이 일을 보고 부랴부랴 올라오는 길. 특유의 싸한 느낌, 그 분(암성 피로)이 오려는 조짐. 가까운 휴게소로 가서 음료를 마시고 잠시 눈을 붙였어요. 갑자기 툭 튀어나오는 그 분은 반갑지 않지만, 이제 어떻게 대처할지를 아니까요. 10분의 휴식으로 급속 충전 가능! 다시 맑은 정신으로 신나게 집으로~

 

무사히 500킬로 장거리 운전을 마쳤어요. 물론 집에 오자마자 곯아 떨어졌고, 또 다른 현실인 저녁밥과 맞닥뜨렸지만요. 그래도 기분은 좋았어요. 이제 나는 다시 장거리 운전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니까요. 스스로 쌓아올렸던 마음 속 두꺼운 벽을 살포시 밀어낸 것 같아요. 벽이 사라진 공간만큼 자신감을 되찾고, 다시 새로운 나다움으로 채워보려구요.

 

여러분도 혹시 스스로 만든 벽이 있다면, 살짝 용기내서 밀어볼까요?

※ 힐오(Heal-O) 플랫폼의 운영주체인 주식회사 케어랩스로부터

소정의 원고료를 지원받고 작성한 콘텐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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