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항암과 수술이 끝난 후, 나의 평범한 하루
안녕하세요. 저는 삼중양성 유방암 2기로 진단받고 선행 항암치료와 전절제 수술을 마친 뒤, 현재 호르몬 및 표적치료를 이어가고 있는 유방암 환우입니다.
"치료 다 끝났으니 이제 괜찮아?" 주변 사람들이 종종 묻는 안부 인사에, 저는 잠시 머뭇거리곤 합니다. 이걸 어디까지 말해야 하나 항상 고민이 되는 것 같아요. 가장 힘들었던 항암과 수술이라는 큰 파도는 지나갔지만, 제 삶이 암 진단 이전으로 완벽하게 돌아간 것은 아니니까요.
이번엔 암 생존자로서 살아가는 저의 '평범한 하루'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스트레칭
저의 아침은 호르몬 치료제인 아로마신의 부작용, 관절의 뻣뻣함을 느끼며 시작됩니다. 밤새 굳어 있던 몸을 일으키는 것이 힘들기도 하지만, 이것 또한 적응 되는 것 같아요. 눈 뜨면 핸드폰을 체크하면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바로 스트레칭이에요. 아침마다 방에 깔려 있는 매트로 눈 비비며 기어가서 하루20분 스트레칭 비디오를 켜놓고 따라해요. 한 5분 지나면 온 몸이 풀리면서 기분이 좋아집니다. 스트레칭을 하고 난 하루는 그렇지 않은 날과 너무나 달라서, 절대 빼먹지 않고 하게 되네요. 매일같이 꾸준히 해서 그런지 요즘은 점점 관절 아픈 게 덜해지는 느낌이에요.
아침식사
스트레칭으로 하루를 열고 나면 아침을 챙겨먹어요. 아로마신이 공복보다는 식후에 흡수를 더 잘 시킨다는 얘기를 들은 후로는 약을 먹기 위해서라도 아침을 잘 거르지 않아요. 저는 아침잠이 많은 편이라 중고등학교때부터 아침을 안 먹고 살았는데요, 제 손으로 이렇게 아침을 먹는 게 아직도 가끔은 신기하게 느껴져요.
아침식사로는 보통 오믈렛이나 요거트에 그래놀라와 블루베리를 섞어서 먹어요. 그 후에는 아로마신 한 알과 함께 칼슘, 비타민D, 마그네슘, 비오틴 등 한 움큼의 영양제를 물과 함께 삼킵니다. 예전 같았으면 귀찮아서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일이죠. 하지만 이 알약들은 이제는 저와의 약속이 되었어요.
가족과의 소통
저는 가족과 떨어져 산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요. 항암을 하면서 본가에 들어가서 거의 1년을 살고, 또 이런 큰 일들을 겪다 보니 가족의 소중함을 아주 크게 깨달았어요. 이전에는 독립적이라는 이유로, 혹은 바쁘다는 핑계로 소홀했던 연락들이, 이제는 제 삶의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가 되었습니다. 힘든 시간을 함께 지내며, 서로의 안부가 세상 그 어떤 것보다 소중하다는 것을 뼛속 깊이 깨달았기 때문일 거예요. 그래서 최대한 자주 집에 연락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조카와 영상통화도 하고, 부모님께 전화도 자주 드려요. 예전 같으면 무소식이 희소식이다 했을 텐데 말이에요.
친구들과의 약속, 술자리
예전의 저는 술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었어요. 술도 사람도 좋아해서, 가끔씩 친구 만나서 맥주 한잔 하는 것도 좋아했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그에 맞는 술과 함께 즐기는 것도 좋아했어요. 그런데 술이 호르몬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저와 같은 삼중양성 유방암에는 좋지 않다는 얘기를 듣고는 술을 끊었습니다. 하지만 달라진 건 없어요. 처음엔 술 없는 술자리가 어색하지 않을까 걱정도 했지만 그렇지 않았어요. 저는 여전히 친구들과 어울려서 시간을 보내는 게 즐겁고, 그 분위기를 즐깁니다. 이제는 맥주 대신 0.0% 무알콜 맥주를 먹고, 일반 칵테일 대신 무알콜 칵테일을 주문합니다. 취하지 않아도 그 순간의 즐거움을 온전히 기억하고 즐기게 되어서 오히려 더 좋은 것 같기도 해요. 제 삶을 술이 없어도 여전히 즐거운 삶으로 만들고 싶어요.
식단
무리한 식단은 하지 않으려고 해요. 암에 좋다는 특정 음식만 먹거나, 먹고 싶은 음식을 무조건 참는 강박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해요. 맛있는 음식이 주는 행복함을 포기해야 한다면 너무 슬프니까요. 그냥 좀 덜 건강한 음식을 먹은 다음 날에는 샐러드를 한 끼 더 먹는다든지, 좀 더 신경 써서 먹으려고 한다든지 하는 정도로 균형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래도 적색가공육이나 숯불에 구운 고기 같은 음식들은 발암물질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피하려고 노력해요.
운동
꾸준한 운동을 해요. 최소 일주일에 3-4번 정도 하려고 합니다. 집 앞에 나가서 30분 달리기를 한다든지, 필라테스를 하러 간다든지 해요. 수술한 지 4개월쯤 되었을 때부터는 조심스럽게 테니스도 다시 치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절대 무리하진 않아요. 예전의 저였다면 조금 무리해서라도 정해진 목표를 채웠겠지만, 이제는 제 몸이 보내는 작은 신호에 귀를 기울입니다. '오늘은 좀 쉬고 싶어'라고 몸이 말하면, 죄책감 없이 휴식을 선택해요. 예전엔 한계까지 밀어붙이는 걸 좋아했다면, 이젠 스스로를 아끼고 조절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배웠어요. 더군다나 아직 표적치료 중이기 때문에 심박수도 체크해 가면서 운동하고, 조금 무리한 날 다음엔 휴식도 충분히 하려고 노력합니다.
일
저는 제 일을 너무나 좋아합니다. 사실 병가를 내고 휴직한 동안에도 일이 그리웠어요. 진단 전에는 더 높은 곳을 향해, 더 많은 것을 성취하기 위해 조급하게 달렸던 것 같아요. 하지만 지금은 다시 일을 할 수 있다는 그 사실 자체에, 동료들과 소소한 대화를 나누고 제 역할을 해낼 수 있는 평범한 하루에 깊이 감사하게 됩니다. 일에서 오는 제가 살아있다는 감각과 어딘가에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기분은 다른 곳에서 느끼기가 힘든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다시 일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취미
일과 운동이 다시 제 삶의 틀을 잡아준다면, 그 안의 여백을 채우는 건 흙을 만지고 그림을 그리는 시간입니다. 항암 중에 '이렇게 시간을 흘려보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던 도예와 스케치가, 이제는 제 일상에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취미가 되었어요. 흙을 만져서 집중하며 기물을 만들어내고, 펜으로 스케치 선을 따는 동안에는 제가 가진 불안이나 과거에 대한 후회는 잠시 잊고 오롯이 현재에 머물게 되더라고요. 무언가를 만들어낸다는 성취감은, 잃어버렸던 자신감을 되찾아주는 가장 좋은 약이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하루가 흘러갑니다. 누군가에게는 단조롭고 심심하게 보일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암이라는 긴 터널을 지나온 저에게, 이 평범하고 조용한 하루는 소중한 선물이에요. 저의 하루는, 예전보다 조금 느리고, 조금 더 세심하며, 훨씬 더 많은 감사함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평범함 속에서, 새로운 인생을 살아내고 있습니다.
※ 힐오(Heal-O) 플랫폼의 운영주체인 주식회사 케어랩스로부터 소정의 원고료를 지원받고 작성한 콘텐츠입니다.
※ 본 콘텐츠는 작성자의 실제 경험에 기반한 개인 사례이며, 의료적 판단이나 치료 결정은 반드시 의료진과 상담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