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유방암 경험자 타샤에요.
일 년여의 긴 치료 기간 동안 ‘이것만 견디면, 이거만 참으면’ 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그렇게 기다리던 치료는 끝났지만 막상 기쁘기만 하지는 않더라고요. 몸 여기저기 치료의 후유증이 가득했어요. 머리카락은 여전히 자라지 않아 모자를 썼구요. 기대감이 큰 만큼 바로 일상으로 돌아오지 못해서 더 실망스럽고 힘들었던 것 같아요.
가족이나 주위 사람들은 일단 치료를 마치면 전부 끝났다고 생각하기에 이런 마음을 이해 받기는 쉽지 않았어요. 치료 후 몸과 마음을 추슬러야 했어요. 무엇보다 암 생존자로의 삶을 받아들이고 다시 사회로 돌아가기 위한 적응과 연습이 필요했어요.
다행히도 저만 이런 게 아닌지, 비슷한 경험을 하는 암 경험자 250만명(24년 기준)을 적극적으로 돕기 위한 국가의 지원 제도가 있는데, 바로 암생존자통합지지센터예요.
암생존자통합지지센터는 암 치료 후 다양한 신체, 정신 및 사회적 문제를 경감하고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서비스를 제공해요. 특히 암생존자로서 직면하는 문제를 스스로 극복하도록 자기 관리 능력과 회복탄력성을 증진시키는 걸 중점적으로 하고 있어요. 한 마디로 암 이후의 삶에 스스로 적응하고 문제를 해결해나갈 수 있도록 돕는 거죠. 이런 지지와 응원은 결국 암 경험자 개개인의 건강 증진과 사회 복귀로 이어지고요. 2019년 국립암센터가 중앙암생존자통합지지센터로 지정되었고, 전국 13개 권역에 센터가 있어요.
암생존자통합지지센터
대상 : 암진단 후 완치 목적의 주요 치료(수술, 항암, 방사선)를 마친 암생존자와 가족
참여 방법 : 거주 지역 내 암생존자통합지지센터에 방문 및 전화로 등록
서비스 내용
1) 신체적 지원 : 운동 프로그램, 피로 관리, 영양 및 식생활 교육 등
2) 심리적 지원 : 심리 상담, 수면 위생 교육, 이완 훈련, 재발에 대한 두려움 관리 등
3) 사회적 지원 : 직업 복귀 지원, 사회복귀 상담, 지역사회 자원 연계 등
센터 현황
국립암센터(중앙센터), 강원대학교병원(강원), 아주대학교병원(경기), 가천대학교길병원(인천), 단국대학교병원(충남), 충남대학교병원(대전), 충북대학교병원(충북), 전북대학교병원(전북), 화순전남대학교병원(광주·전남), 칠곡경북대학교병원(대구·경북), 경상대학교병원(경남), 부산대학교병원(부산), 울산대학교병원(울산), 제주대학교병원(제주)
센터가 소재한 병원에서 치료 받지 않아도 거주 권역의 센터에 등록이 가능해요. 저는 수원에 거주하고 있어서 경기암생존자통합지지센터에 등록했어요. 치료를 마치고 뭘 해야 할지 몰라 막막할 때 다양한 프로그램의 도움을 받았어요. 개별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인바디 등 기본적인 체력 상태를 체크할 수 있고, 미리 예약을 통해 상담을 받을 수도 있어요.
처음 센터에 방문하는 날 상담을 하다가 저도 모르게 펑펑 울었더래요. 치료를 마치고 겉으로는 씩씩하지만, 어디에 말도 못하고, 누구에게도 이해 받지 못했던 힘든 마음을 마치 들여다본 것처럼 이해하고 공감해주셨거든요. 상담 선생님은 암을 경험하지 않았는데, 어쩌면 이렇게 내 마음을 잘 아실까 신기하기도 하고 감사했어요.
암은 건강에서 비롯된 문제지만, 실제로는 일상생활, 주위 사람과의 관계, 일, 정서적인 부분까지 많은 영향을 주는데, 보통 사람들은 건강의 문제로만 바라보니까요. 나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도와주려는 누군가가 있다는 게 큰 힘이 됐어요.
그 뒤로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많은 프로그램에 참여했어요. 근력 운동 교실, 올바른 걷기, 이완 명상 훈련, 회복관리를 위한 원예치료, 직장인 암생존자 건강관리 꿀팁, 청년암생존자 토크행사, 암 생존자 가족 초청 행사, 암 생존자와 가족을 위한 교육 등. 암 생존자 뿐 아니라 보호자나 가족과 함께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치료 이후의 삶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어요. 특히 생활습관이나 식습관은 같이 사는 사람들이 함께 해야 하는 부분이니까요.
모든 프로그램이 만족스러웠지만, 그 중에서 원예치료 프로그램이 기억나요. 식물을 키우는 건 왠지 부담스럽지만 ‘회복’을 바라는 마음과 ‘원예’에서 느껴지는 푸릇함이 좋아서 용기를 내어 신청했어요. 필요한 재료는 사전에 키트로 집으로 배송 받았고, 전문 원예치료사님께서 수업을 해주셨어요.
행복한 암투병자 여러분을 만나게 되어 반갑다는 정겨운 인사말에 이어 기억나는 멘트
“식물은 말을 걸지 않고, 예뻐해 달라고 하지 않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기분 좋게 해요”
생각해보니 암 진단 후 선물로 받은 꽃과 몬스테라를 바라보고 있으면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어요. 아마 이런 이유였나봐요. 이 날은 스킨딥서스라는 수경식물에 대해 배우고 화분을 만들었어요.
본격적인 원예 수업 전에 1부에서는 다른 암 경험자들과 인생그래프를 그리고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모두 나이나 직업, 살아온 환경도 달랐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죠. 어느 날 갑자기 암을 맞닥뜨리고 삶의 모습이 달라졌다는 거요. 하지만 모두 암이 찾아온 시간이 인생의 가장 바닥인 만큼 점점 앞으로 더 좋아질 일만 있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어요.
어떤 분은 암 이전에 크고 작은 시련을 겪었는데, 어쩌면 암을 이겨내기 위해 미리 준비한 기회를 준 것 같다는 말씀도 하셨구요. 어떤 분은 치료 과정에서 몸과 마음의 변화 때문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느낌이었지만, 그 시간 속에서 함께 하는 이들의 위로 걱정 지지 돌봄 응원 챙김 배려 를 받고, 잘 이겨내고 다시 일어서야 한다는 의지를 얻었다고 해요. 그 동안 바쁘게 사느라 잊고 지낸 일상의 소중함과 가진 것에 대한 감사함도 깨닫게 되었고요.
이어서 마크라메 공예로 스킨딥서스 수경 화분을 꾸몄어요. 마크라메는 예전에 선원들이 긴 항해 동안 소일거리 삼아 밧줄로 이것저것 만들던 것에서 유래했다고 해요. 매듭이 이어져서 근사한 작품으로 변신하는 게 신기했어요. 다만 학창시절에 미술을 너무나도 싫어했고, 손으로 하는 건 재주가 없어서 당황했지만 다행히 기본 매듭 만들기는 어렵지 않았어요. 손으로 하는 건 다 꽝인제가 직접 만든 작품이라니 뿌듯하더라고요.
식물을 접하고, 공예를 배운 것도, 무엇보다 나의 삶을 돌아보면서 스스로를 위로하고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생각하고 이야기 나누어서 좋았어요. 암이라는 찐한 경험을 한 분들과 나눈 공감과 위로도요.
암은 분명 힘든 시련인 건 맞지만, 치료 중에도 이후에도 혼자만의 외로운 싸움은 아니라는 걸 잊지 않으면 좋겠어요. 가족이나 친구 외에도 잘 치료 받고 일상으로 돌아오기를 응원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걸요. 그런 믿음이 우리가 좀 더 빨리 회복하고 제 자리를 찾아가는데 도움이 될 거에요. 치료를 마쳤지만 아직 힘들다면, 조금 낯설고 어색하더라도 살짝 용기 내어 암생존자지지센터에 연락해보시면 어떨까요? 평온한 일상으로의 회복을 진심으로 응원해요.
※ 힐오(Heal-O) 플랫폼의 운영주체인 주식회사 케어랩스로부터 소정의 원고료를 지원받고 작성한 콘텐츠입니다.
※ 본 콘텐츠는 작성자의 실제 경험에 기반한 개인 사례이며, 의료적 판단이나 치료 결정은 반드시 의료진과 상담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