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암 ∙ 경험 공유

#1 하루하루 채워나가기, 파란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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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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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삼중양성 2기로 선항암, 수술을 마치고 지금은 표적치료 중입니다.

저는 암 치료를 하면서 하루하루를 채워나가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일상이 사라져버렸다는 것에 다들 공감하실 거라 생각해요. 더 이상 일도 하지 않았고, 좋아하던 운동도 할 수가 없었고, 미래는 불투명했고, 즐겨하던 여행도 할 수가 없었어요. 저에게 허락된 건 방에 누워서 작은 핸드폰 화면으로 다른 세상의 사람들이 뭘 하는지 바라보는 것뿐이었던 것 같아요. 닥치는 대로 영화를 보고, 드라마를 보고, 웹툰을 보고, 그런 것들로 하루를 소비하며 보냈어요.

그렇게 지나다가 어느 날, 이렇게 긴 휴가를 가질 수 있는 것도 행운이고, 다시는 없을 수도 있는 그런 시간이라는 생각에 더 이상 이렇게 보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운동을 제외하고 제가 평소에 배워보고 싶었던 것들이 뭐가 있을까 적어보기 시작했어요. 도자기, 꽃꽂이, 그림 그리기, 가죽 공예, 가구 만들기, 글쓰기, 뭐 이런 것들이요. 제가 취미 부자거든요. 만약에 머리나 몸을 쓰는 여건이 되는 상황이었다면 리스트는 더욱 늘어났겠지만, 지금 여건 상 할 수 있는 한에서 하나씩 해 나가기 시작했어요. 큰 힘은 쓰지 않는, 그래도 손으로 뭔가 꼼지락거릴 수 있는 일들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저런 취미 너무 돈 많이 드는 거 아니야? 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았어요. 예전에는 평일에 일하느라고 직장인을 위한 저녁반이나 주말반 밖에 듣지 못했는데, 저에겐 이제 시간이라는 게 남아돌더라고요. 상대적으로 저렴한 평일 낮시간도 여유롭게 들을 수 있어서 집 근처 문화센터를 찾아다니기 시작했어요. 도자기는 집 근처의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도자기 체험장을 3개월 정도 다녔는데, 주 1회에 한 달에 6만 원이라는 말도 안 되는 금액에 매 달 집에 직접 만든 그릇을 세네 개씩 들고 갈 수 있었어요. 유약을 배우지 못하는 것이 조금 아쉬워서 지금은 집 근처의 공방에서 따로 배우고 있어요. 요즘 어싱이라고 하면서 흙에서 맨발 걷기 많이 하시잖아요. 저는 손으로 흙을 만지는 것도 엄청난 힐링이 되었어요. 초집중해서 코일을 하나하나 쌓아나가다 보면 시간이 금세 흘러있더라고요.

꽃꽂이는 어떤 꽃 업체에서 운영하는 초급반 수업을 들었고요, 이것도 수업이 끝나면 너무나 예쁜 꽃을 한 아름 안아갈 수 있어서 좋았어요. 다양한 기법을 배울 수 있었고 나름 수업이 체계적으로 잡혀있어서 좋았어요. 8주에 걸친 초급반을 마치고 나면 웬만한 간단한 형식들은 다 다뤄보게 되었어요. 최근에는 친구 결혼식에서 가져온 꽃다발을 수업 때 배웠던 방식으로 멋지게 집을 장식했는데 그렇게 뿌듯할 수 없더라고요.

그리고 집 근처 문화센터에서 그림도 그리기 시작했어요. 어반스케치라는 수업인데 도시의 풍경을 연필로 그리고, 펜으로 선을 따고, 수채화물감으로 색을 입히는 방식이에요. 아주 어릴 때 엄마 손에 이끌려 미술학원을 다녔던 이후로 그림은 처음인데, 너무 재밌더라고요. 그림을 하나하나 완성해 나갈 때마다 실력이 느는 것이 느껴집니다.

이렇게 취미를 하나하나 늘려나간 덕분에 시간이 나름 빠르게 흘러가고 있는 것 같아요. 힘든 상황이지만 하루하루의 소소한 기쁨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뭔가 만들어나간다는 성취감에 마음건강이 훨씬 좋아졌어요. 유방암 환자 중에는 아이를 키우시는 엄마인 분들이 많으시죠. 그래서 아이들 케어한다고 시간도 여력도 없다고 느끼실 수도 있고, 저더러 미혼이라 그렇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해요. 그래도 우리 이왕 이렇게 아프게 된 거, 이참에 나를 위한 시간과 나를 위한 활동 하나쯤 시작해 보시는 건 어떨까 합니다. 마음이 행복해야 몸도 잘 견디고, 훌훌 털고 일어나서 그 힘으로 또 우리의 일상을 살아가게 될 테니까요.

힐오(Heal-O) 플랫폼의 운영주체인 주식회사 케어랩스로부터 소정의 원고료를 지원받고 작성한 콘텐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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