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을 마치고 퇴원한 첫날, 나는 냉장고 앞에 한참을 서 있었다.
이전에는 그냥 ‘배고프면 먹는 것’이었던 식사가 이제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다.
뭘 먹어야 할까?
뭘 먹으면 안 될까?
먹고 나서 배가 아프면 어떡하지?
그날은 결국 흰죽 한 그릇으로 하루를 버텼다.
유명하다는 암환자 식단,
누가 낫게 해줬다는 건강식품,
가족과 지인이 권해준 한방차와 즙들.
정보는 넘쳐났고, 충고는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중 상당수는 내 몸에 맞지 않았다.
내가 아무리 믿고 먹어도,
내 배는 팽창했고, 속은 메스꺼웠으며, 화장실과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싸웠다.
그래서 나는 음식을 고르는 방식부터 바꾸었다.
내 몸이 반응하는 방식에 귀 기울이는 일부터 다시 시작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기록부터 했다.
오늘 뭘 먹었는지, 먹고 나서 어땠는지.
그렇게 하루하루 메모를 쌓다 보니,
‘이 음식은 나랑 안 맞는다’는 감각이 조금씩 생겼다.
반면, 유산균 하나만으로도 눈에 띄게 배가 편해지는 날이 있었다.
먹는다는 건
살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살아 있다는 걸 확인하는 일이기도 하다.
한 숟갈의 죽을 떠서 조심스럽게 넘기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때 느끼는 안도감.
조금은 부드러운 생선살을 씹으며 느끼는 ‘괜찮다’는 신호.
나는 그 순간들을 통해 다시 살아 있다고 느꼈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아픈 몸과 함께 먹는다’는 건
내 몸의 입장이 되어보는 일이라는 걸 이해하게 되었다.
예전에는
‘맛있냐 없냐’만이 기준이었다면
이제는 ‘이 음식이 오늘의 내 장에게 어떤 영향을 줄까?’를 생각한다.
그건 불편함이 아니라 존중이다.
누군가 내게 물었다.
“항암 중인데 피자 먹고 싶으면 어떡해요?”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당신의 장이 뭐라고 하는지 먼저 들어보세요.
몸은 늘 말하고 있어요.
우리는 다만 그 목소리를 무시해온 거죠.”
오늘도 나는 먹는다.
많이 먹지는 못하고, 가끔은 식욕도 없다.
하지만 천천히, 느리게, 나와 함께 먹는다.
그것이 지금의 내 방식이다.
아픈 몸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삶을 계속 이어나가는 작은 연습으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