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암 ∙ 자유 이야기

[episode 2] 아픈 몸과 함께 먹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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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도빛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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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을 마치고 퇴원한 첫날, 나는 냉장고 앞에 한참을 서 있었다.

이전에는 그냥 ‘배고프면 먹는 것’이었던 식사가 이제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다.

뭘 먹어야 할까?

뭘 먹으면 안 될까?

먹고 나서 배가 아프면 어떡하지?

그날은 결국 흰죽 한 그릇으로 하루를 버텼다.


유명하다는 암환자 식단,

누가 낫게 해줬다는 건강식품,

가족과 지인이 권해준 한방차와 즙들.

정보는 넘쳐났고, 충고는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중 상당수는 내 몸에 맞지 않았다.

내가 아무리 믿고 먹어도,

내 배는 팽창했고, 속은 메스꺼웠으며, 화장실과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싸웠다.

그래서 나는 음식을 고르는 방식부터 바꾸었다.

내 몸이 반응하는 방식에 귀 기울이는 일부터 다시 시작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기록부터 했다.

오늘 뭘 먹었는지, 먹고 나서 어땠는지.

그렇게 하루하루 메모를 쌓다 보니,

‘이 음식은 나랑 안 맞는다’는 감각이 조금씩 생겼다.

반면, 유산균 하나만으로도 눈에 띄게 배가 편해지는 날이 있었다.


먹는다는 건

살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살아 있다는 걸 확인하는 일이기도 하다.

한 숟갈의 죽을 떠서 조심스럽게 넘기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때 느끼는 안도감.

조금은 부드러운 생선살을 씹으며 느끼는 ‘괜찮다’는 신호.

나는 그 순간들을 통해 다시 살아 있다고 느꼈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아픈 몸과 함께 먹는다’는 건

내 몸의 입장이 되어보는 일이라는 걸 이해하게 되었다.


예전에는

‘맛있냐 없냐’만이 기준이었다면

이제는 ‘이 음식이 오늘의 내 장에게 어떤 영향을 줄까?’를 생각한다.

그건 불편함이 아니라 존중이다.


누군가 내게 물었다.

“항암 중인데 피자 먹고 싶으면 어떡해요?”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당신의 장이 뭐라고 하는지 먼저 들어보세요.

몸은 늘 말하고 있어요.

우리는 다만 그 목소리를 무시해온 거죠.”


오늘도 나는 먹는다.

많이 먹지는 못하고, 가끔은 식욕도 없다.

하지만 천천히, 느리게, 나와 함께 먹는다.

그것이 지금의 내 방식이다.

아픈 몸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삶을 계속 이어나가는 작은 연습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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