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암 ∙ 경험 공유

#2 32세에 생리가 멈췄습니다, 보들보들 쉼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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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들보들 쉼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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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32살, 아직 젊다고 할 수 있는 나이에 대장암 4기로 진단받아 벌써 4년째 항암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이렇게 이른 나이에 이런 글을 쓰게 될 줄은 정말 몰랐어요. ‘항암’이라는 단어가 내 인생에 들어온 것 자체도 큰 충격이었지만, 그보다 더 놀라웠던 건 생각보다 훨씬 빨리, 그리고 너무 조용하게 찾아온 생리의 멈춤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새로운 항암제로 약물을 변경한 뒤 한두 달 정도 생리가 오지 않는 걸 대수롭지 않게 넘겼어요. 예전에도 항암제에 따라 가끔 생리가 멈춘 적이 있었기에, 이번에도 곧 돌아오겠거니 했던 거죠.

그런데 2개월이 지나도 소식이 없자, 오히려 한동안은 해방감이 들기도 했어요. 매달 찾아오는 번거로움에서 벗어났다는 생각에, 생리대 챙기지 않아도 되고, 일정에 구애받지 않아도 되어 홀가분하기까지 했죠.

하지만 그 해방감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점점 몸에서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변화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어요.

가장 먼저 달라진 건 ‘땀’이었습니다.

처음엔 여름이라서 그런가, 혹은 항암 부작용인가 싶었지만, 땀의 양과 빈도가 점점 심해졌어요. 에어컨을 켜둬도 머리부터 얼굴, 등까지 하루에도 몇 번씩 땀이 흐르고, 잠깐 서서 설거지를 할 때나, 화장실에 잠깐 앉아있을 때, 계단을 오르내릴 때, 심지어 한밤중에 식은땀 때문에 잠에서 깨기도 했습니다.

땀이 많아지면서 지하철에서도 가만히 앉아있다가 땀이 줄줄 쏟아지니 외출이나 사람 만남이 점점 부담스러워졌고, 예전과 달라진 내 몸을 실감하게 됐어요. 혹시 누가 볼까, 옷이 젖으면 어쩌나 하는 불안도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에어컨이 빵빵한 공간에서도 식은땀이 흐르는 걸 경험했을 때는 ‘내 몸이 정말 예전과는 다르구나’라는 걸 절실히 느꼈어요.

원래 저는 여름에도 찬물을 잘 마시지 않고, 미지근한 물을 선호했어요. 찬물 샤워도 힘들어하는 편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찬물을 마셔도, 찬물로 샤워를 해도 분명히 차가운 물인데도 아주 시원하게 느껴지지 않더라고요. 그래도 다행히 열이 나는 정도까지는 아니었습니다.

이 즈음부터 내 몸에 열이 많아진 게 단순히 항암 부작용일지, 아니면 더 큰 의미가 있는지 고민이 많아졌습니다. 결국 생리가 세 달째 멈추자, 항암치료를 담당하던 종양내과 교수님께 말씀드렸고, 병원에서 폐경클리닉으로 협진을 받아 난소기능 검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이번 주에 들은 결과는 ‘거의 폐경’이라는 진단이었습니다.

그 순간 마음이 복잡해지더라고요.

“이제 정말로 생리를 안 하게 되는 건가?”

“앞으로 내 몸은 어떻게 변화할까?”

아직 30대 초반인데 이런 변화를 겪게 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진료 중 교수님이 여성호르몬제 처방이 불가피하다고 하시며 “여성호르몬제 처방을 해드려야 하는데, 생리를 하는 걸로 드릴까요, 안 하는 걸로 드릴까요?”라고 물으셨고, 저는 망설임 없이 “생리 안 하는 쪽으로 주세요”라고 대답했어요.

이미 생리가 없는 일상에 적응을 해버렸으니까요. 또 한편으론 여성호르몬이 항암 중 면역력이나 기분, 대장 건강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하셔서, 약을 복용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여성호르몬제 복용이 그리 간단치만은 않았어요. 살이 찔 수도 있고, 피부에 여드름이 날 수도 있다는 설명을 들으니 괜히 걱정이 앞섰습니다. ‘이런 약까지 먹어야 하나?’ 고민도 됐지만, 건강을 위해 결국 복용을 시작했고 지금은 4일째가 되었습니다. 면역력이나 기분 조절에 도움이 된다고 하시니, 내 몸에 나타나는 변화를 관찰하며 조심스럽게 복용하고 있습니다.

이 호르몬 변화가 제 일상에 미치는 영향이 생각보다 크다는 걸 이번에 알게 되었어요. 몸이 쉽게 열이 오르니 외출도 망설여지고, 땀이 많아지다 보니 사람 만나는 것도 점점 피하게 됩니다. 혹시 갑자기 땀이 나면 어쩌지, 화장실에서 용변을 보다 땀에 젖으면 어떡하지, 이런 걱정이 앞섭니다. 괜스레 이미 폐경을 겪으신 어머니의 몸 상태를 예전엔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아 죄송한 마음도 듭니다.

이런 변화가 식습관이나 미각에도 영향을 주는지 모르겠지만, 예전보다 짠 음식, 단 음식, 매운 음식을 훨씬 더 못 먹게 되었어요. 혹시 여성호르몬이 줄어서 그런 건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입맛이 변하니 식사 준비나 외식 메뉴도 점점 달라지더라고요.

감정적으로도 변화가 많았습니다. 처음엔 해방감, 그 다음엔 당황스러움, 그리고 언젠가부터는 왠지 모를 외로움이 찾아왔어요. 또래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자연스럽게 생리나 여성 건강 이야기가 나올 때면 괜히 소외된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나는 이제 그런 고민과는 거리가 멀구나…” 가끔은 부럽기도 하고, 또 한편으론 “내가 잘 살아가고 있는 걸까?” 스스로를 되돌아보게도 됐어요.

운동도 예전만큼 하지 못하게 됐습니다. 땀이 너무 많이 나니 헬스장이나 요가를 다니는 것도 어렵고, 집에서는 가벼운 스트레칭이나 산책만 하게 되더라고요. 운동을 하고 나면 오히려 땀 때문에 더 지치고, 씻고 나와도 땀이 멈추지 않아 불편함이 계속됐습니다.

밤에는 종종 불면증에 시달리기도 해요. 식은땀 때문에 몇 번씩 잠에서 깨고, 몸이 너무 더워서 금방 깨버리니 아침에 일어나면 오히려 더 피곤할 때도 많습니다.

이 모든 변화가 저에게는 꽤 큰 도전이었어요. 몸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 애쓰는 동안 저 역시 마음을 다잡아야 했습니다. 처음엔 이런 변화를 받아들이기 힘들었지만, 시간에 기대고,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물을 자주 마시고, 얇은 옷을 여러 겹 입거나, 가능한 한 시원한 시간대에만 외출하려고 합니다. 마음이 힘들 때는 상담도 받고, 내 몸의 신호를 자주 살피며 나만의 리듬을 다시 찾아가려 노력하고 있어요.

한편으로는 이런 변화가 저만 겪는 일은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저처럼 젊은 나이에 폐경을 경험하는 분들도 분명 계실 거예요. 저는 처음엔 당황스럽고, 속상하고, 왠지 모르게 내 몸이 더 약해진 것 같아 무기력해지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아직도 가끔은 거울을 보며 ‘내 몸이 이렇게 변했구나’ 생각할 때마다 마음이 복잡해져요. 그래도 오늘 하루,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해보려고 노력합니다.

언젠가 이 변화마저 내 삶의 일부로 웃으며 받아들일 수 있는 날이 오겠죠.

혹시 이 글을 읽는 분들 중 저처럼 비슷한 경험을 하고 계신 분이 있다면, 우리 서로의 변화를 인정하며, 오늘 하루도 다정하게 자신을 챙겨주자고 말하고 싶어요.


※ 힐오(Heal-O) 플랫폼의 운영주체인 주식회사 케어랩스로부터 소정의 원고료를 지원받고 작성한 콘텐츠입니다.

※ 본 콘텐츠는 작성자의 실제 경험에 기반한 개인 사례이며, 의료적 판단이나 치료 결정은 반드시 의료진과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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