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암 ∙ 경험 공유

#3 대장암 4기, 3번째 재발. '언제 완치돼?'라는 질문에 하는 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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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들보들 쉼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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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조금 진솔한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종종 지인들이 “언제 완치돼?”라고 물어올 때마다, 평소엔 “글쎄, 열심히 치료 중이야”라고 짧게 넘기지만 사실 그 말 한마디에 뒤따르는 제 마음의 파동은 꽤 복잡합니다.

2024년 11월 15일, 세 번째 수술을 받았습니다. 폐 일부를 떼어내는 큰 수술이었어요.

수술대에 오르기 전에는 “이번엔 정말 끝일 거야”, “이 고비만 넘기면 다시 건강을 되찾을 수 있을 거야”라는 희망이 있었죠. 수술 후에도 회복에만 집중하며, 다시 일상을 꿈꿨습니다.

그런데 2025년 3월 초, CT 검사 결과를 들으러 갔던 그날. 간, 폐, 늑막, 복막 등 여러 곳에 재발 의심 소견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 순간 머리가 하얘졌어요. 사실 이전에도 재발이 두 번이나 있었기 때문에 약간의 예감은 있었지만, 막상 눈앞에 닥치니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더라고요.

집에 돌아오는 길, 엄마와 나란히 걸으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엄마 얼굴에는 말로 다하지 못할 슬픔과 걱정이 묻어 있었고, 저는 오히려 엄마를 걱정시키기 싫어서 일부러 덤덤한 척했네요. 사실은 마음 한구석이 뻥 뚫린 것처럼 허전하고 서러웠는데, 가족 앞에서는 눈물을 참았습니다.

대신 배가 너무 고파서, 아무 말 없이 밥을 먹었습니다. 씹는 동안만큼은 잠시라도 이 복잡한 생각에서 벗어나고 싶었나 봅니다.

그날 진료실에서 원래 항암을 계속 하던 큰 병원에서는 기존에 쓰던 항암제는 더 이상 효과가 없다고 했고, 이제 선택지는 새로운 항암주사와 항암약의 조합 뿐이라고 설명해주셨습니다. “이제 남아 있는 옵션이 많지 않다”는 말에 처음에는 좌절감이 컸어요. 머릿속에 ‘이게 마지막 치료일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스치니까, 울컥해졌습니다. 하지만 가족 앞에서 또 울 수는 없어서, 혼자 자취를 하는 집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한참을 멍하니 누워있었습니다. 그때 ‘아, 내가 정말 살고 싶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후 제가 항암부작용 치료를 받는 병원에 상담을 받으러 갔습니다. 상담실에 들어서며 “일단 이야기를 듣고 결정하자”는 마음이었어요.

병원 원장님은 검사 결과를 꼼꼼히 살펴보신 뒤, “간과 폐는 이미 알고 있던 부분이고, 늑막이나 복막은 확실하지 않으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해주셨습니다. 큰 병원에서 들었던 ‘복막 전이 의심’이라는 말에 한동안 모든 희망이 꺾였었는데, “확실치 않다”는 한마디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원장님은 “우리의 치료 목표는 암을 완전히 없애는 것이 아니라 만성질환처럼 관리하며 삶의 질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설명하셨습니다.

그동안은 암을 ‘적’으로 생각하며 싸워야 한다는 의무감, 그리고 반드시 이겨내야 한다는 부담감에 짓눌려 있었는데, 이제는 암을 달래가며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완치, 그 단어에 매달려서 내 삶의 소중한 시간과 감정을 소모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치료는 심리전이기도 하다”며, 환자가 충분히 고민하고 마음이 준비되었을 때 치료를 시작해도 된다고 하셨습니다. 마음이 불안하고 준비가 안 되어 있으면 약도 잘 듣지 않는다고 하시더라구요.

그 말에 위로를 받아, 그날은 상담실을 나오며 재발 결과를 들은 후 처음으로 마음이 조금 가벼워지는 걸 느꼈어요. 사실 이 항암제가 비급여다보니 비용적인 부담도 적지 않아 새로운 항암제를 아예 시작하지 말까 하는 생각도 했었거든요.

하지만 덕분에 ‘이제 완치는 힘들겠구나’라는 생각에서 ‘그래도 나는 내 방식대로 살아갈 수 있겠구나’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예전에는 암과 반드시 싸워 이겨야 한다고만 생각했는데, 이제는 암과 맞서 싸우기보다는 “말썽 안 부리게 달래가며 살아야지”라는 태도가 생겼어요. 이 변화가 제 마음에 여유를 조금 더 가져다 주기도 했어요.

주변에서는 여전히 “언제 완치되냐, 암은 꼭 이겨야 하는 거 아니냐”고 묻습니다. 물론 저를 생각해 말해주는 그 마음을 이해합니다.

다만, 저에게는 그 질문이 때로는 짐이 되기도 해요.

‘완치’라는 단어가 내게는 너무 멀게 느껴지기도 하고, 매번 그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내가 뭔가 실패한 사람처럼 느껴질 때도 있거든요.

때로는 “힘내!”, “넌 분명 이겨낼 거야!”라는 응원이 오히려 부담스럽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그리고 나만 자꾸 뒤처지는 것 같다는 생각에 스스로를 탓하게 되기도 하거든요.

하지만 이제는 그 질문을 받으면 이렇게 답하게 되네요.

“저는 암을 만성질환처럼 관리하면서 하루하루를 잘 살아가는 게 목표예요.”

죽음이 두렵지 않냐는 질문도 종종 듣습니다.

솔직히 죽음 자체보다 더 무서운 것은 제가 떠난 뒤 남겨질 가족들이에요. 엄마, 아빠, 오빠, 동생, 그리고 가까운 친구들. 나 없는 세상에서 이들이 겪게 될 슬픔이 제 마음을 더 아프게 합니다. 그래서 하루하루를 더 소중히 여기고,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에 집중하려고 해요.

큰 목표를 세우기보다는 오늘 할 수 있는 작은 일, 좋아하는 음식 먹기, 산책하기, 짧게라도 일기를 쓰는 것. 이런 일상이 쌓여가는 것이 제게는 가장 큰 위로이자 힘이 됩니다.

(이렇게 말하는 저는 여전히 일 욕심 또한 버리지 못하는 한 사람이에요)

암이 재발할 때마다, 삶의 소중함을 더 깊이 알게 되는 것 같아요.

몸이 힘들고 마음이 지칠 때도 있지만, 저를 사랑해 주는 가족과 친구들이 곁에 있음을 생각하면, 그리고 제가 좋아하고 즐기는 범위 내에서 일을 하다 보면 다시 힘을 내게 됩니다. 그리고 암이 제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도 점점 더 느끼고 있습니다.

이번에 새롭게 처방받은 항암제는 매일 정해진 시간에 물과 함께 복용해야 해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약을 챙기는 것이 일상이 되었어요. 복용 첫날은 약 봉지를 손에 쥐고 한참을 망설였고, 혹시나 부작용이 심하게 올까봐 긴장도 많이 했네요. 약의 쓴맛이 입안에 남을 때마다 ‘이 약이 내 몸을 지켜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은 알약 하나에도 이렇게 마음이 요동친다는 게 신기하면서도, 제 몸이 얼마나 예민해져 있는지 다시 한 번 느끼는 중입니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분 중에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는 분이 있다면, 너무 완치라는 단어에 매달리지 않아도 된다고, 스스로를 다그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암이라는 병이 삶의 모든 것을 빼앗아가는 것은 아니니까요. 우리는 여전히 사랑할 수 있고, 웃을 수 있고, 오늘을 살아갈 수 있으니까요.

‘언제 완치돼?’라는 질문을 받을 때, 이제는 이렇게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완치보다 중요한 건 오늘을 잘 살아가는 거예요.

저는 지금, 오늘을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 힐오(Heal-O) 플랫폼의 운영주체인 주식회사 케어랩스로부터 소정의 원고료를 지원받고 작성한 콘텐츠입니다.

※ 본 콘텐츠는 작성자의 실제 경험에 기반한 개인 사례이며, 의료적 판단이나 치료 결정은 반드시 의료진과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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