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암 ∙ 경험 공유

#1 대장암 선고부터 수술까지, 데이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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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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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셋, 대장암 선고를 받기에는 너무 젊었습니다.

병이란 원래가 갑작스러운 것이라서 사실 나이와는 관계가 없지만, 그 당시의 저에겐 너무나 가혹한 형벌이었습니다. 마치 인생이 끝나 버린 것 같은 벼랑 끝에서,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의 입구에서, 너무나도 막막한 망망대해에서, 그래도 한 걸음 한 걸음 걸어보려는 환우분들에게 조금이나마 잡을 수 있는 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간혹 싸르르 배가 아파오고 나면 화장실에서 약간의 혈변을 보았습니다. 피가 왈칵 쏟아졌다기 보다는 아주 작은 알약 한 덩어리 정도가 겨우 항문 밖으로 나와 변기로 퐁당 빠지면, 잉크를 물에 떨어뜨린듯이 검붉은 진한 피가 변기물에 퍼졌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피였으니 당연히 병원에 가봐야 한다는 사실조차도, 당시에는 아무런 지식이 없는 상태라 그저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피곤하면 코피를 쏟는 것 처럼, 소화기관도 몸이 좋지 않으면 일시적으로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혈변이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치질일 수 있겠다 싶어 병원을 찾아 내시경 검사를 함께 받아보기로 했습니다.

경기도 부천의 한 대학 병원에서 대장내시경을 받았고, 원래대로라면 1주일 후에 검사결과를 받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와이프 옆에서 비몽사몽 마취에서 겨우 정신을 차릴 때 쯤, 간호사 한 분이 잠시 기다렸다가 진료를 보고 가라고 하시더군요. 저는 무슨 결과가 빨리 나오는 행운인 줄 알았습니다. 곧 이름이 불려서 들어간 진료실에서 의사선생님은 내시경 화면을 보여 주며 대장암 3기라고 알려주셨습니다. 내시경 화면은 대장이 절반쯤 암 덩어리에 막혀있는 사진이었고, 약간의 출혈이 있는 상태였습니다. 급성으로 진행된 것 같아 빨리 수술해야 할 것 같다고 하셨고, 다행히 수술 일정이 비어있어서 3일 후에는 수술을 할 수 있으니 집으로 돌아가서 입원준비를 해오라고 하셨습니다.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는 상태에서 얼떨결에 원무과로 내려가서 입원 안내를 받고 주의사항과 챙겨 올 것들을 잔뜩 들었지만, 머릿속에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집에 오고 나서야 정신이 잠깐 들었는지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서야 가족들에게 이 비극적인 소식을 겨우 전할 수 있었습니다. 가족들 중 한 분이 다른 병원에서도 검사를 받아보자고 제안을 해주셨습니다. 기존 병원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생각이 더 강했다고 하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이런 큰 병을 얻은 사실을, 그렇게 또렷한 내시경 사진을 보고도 믿기지가 않아서, 다른 병원에서도 확인을 해서 확실히 하고 싶었던 마음이 컸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되면 다른 대학병원 진료도 예약해야하고 날짜도 잡아야 합니다. 최소한 한 달은 더 있어야 진료가 가능한데, 그나마 운이 좋은 케이스였습니다. 이전 병원 기록을 요청하면 CD에 진료 기록을 담아서 주는 시스템이 있었습니다. 그 진료 기록들과 내시경 영상 자료들이 담긴 CD를 가지고 서울의 한 대학 병원에 등록을 하고 진료 예약을 잡았습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그 한 달이 너무나 길게 느껴졌습니다. 저를 돌보겠다고 온 가족들과 웃지도 못하고 즐겁지도 않은 지옥같은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습니다. 별로 귀에 들리지는 않으시겠지만, 개인병원에서 진료를 받아 선고를 받은 케이스가 아니라면, 되도록 빨리 수술을 받으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이 시점에서의 한 달은 정말 너무나 길더라구요. 그래도 작은 병이 아니니 다른 병원 진료도 받아보겠다 하시면, 그 시간을 현명하게 잘 보낼 수 있도록 생각해 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딱히 다른 방법이 생각 나지는 않습니다. 다만, 부모님께 조금 늦게 말씀드렸으면 좋았을까? 생활이 불편한 건 아니었으니, 두 번째 진료 결과가 나올 때까지 조금 더 정상적인 생활을 하면서 잘 버텼더라면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한 켠으로 남아있습니다. 다시 그때, 그 나이로 돌아간다면 그 나이의 연령과 제 성숙도에 맞게 저는 또 같은 선택을 했을 것 같긴 하지만요.

지옥같은 한 달을 지나고 서울의 한 대학 병원에서 진료를 받았습니다. CD 기록을 중심으로 다시 한 번 내과 의사선생님으로부터 같은 진단을 받았습니다.

‘대장암 3기ʼ

외과 의사 선생님 진료를 통해서 수술 날짜를 받았습니다. 입원 수속도 안내를 받고 집으로 돌아가 여러가지 물품들을 챙겨서 암 병동에 입원을 했습니다. 저에게 필요한 별 다른 준비물은 없었습니다. 다만, 이 곳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야만 하는 보호자는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준비와 조금 이라도 편하게 잘 수 있는 물품들을 과하지 않게 준비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편한 배게라던지, 혹시 추울지도 모르니 여벌의 옷, 세면도구 같은 것들이요.

수술 전까지 해야하는 일들이 조금 있습니다. 우선 수술 전 정확히 수술 부위를 체크하기 위해서 대장 내시경을 다시 해야합니다. 그런데 이 대장 내시경에는 평소와는 조금 다른 점이 있습니다. 바로 ‘비수면ʼ 으로 해야한다는 사실입니다. 수술을 앞두고 마취성 약물을 투여하게 되면 수술할 때에 마취에 영향이 있을 수 있어서 비수면 진행을 해야한다고 설명해 주셨습니다. 비수면 대장 내시경은 사실 조금 부끄러운 생각들만 버려두면 할 만 했는데, 그것 보다 더 힘들었던 건 반쯤 막혀있는 발병부위를 내시경 카메라가 통과하지 못해서 배를 콕콕 찌를 때 였습니다.

두 번째는 주요 부위의 털을 제거해야하는 일이었습니다. 주어진 크림같은 약을 부위에 바르고 조금 후에 닦아 내면 그대로 털은 제거되는 것이었는데, 문제는 이걸 혼자 할 수 없다는 거였습니다. 결혼한 지 1년도 안된 아내에게 이런 일을 부탁해야하는 것도 참 부끄럽고 어려운 일이었는데, 잘 제거되었는지 확인을 일면식도 없는 간호사에게 받아야 한다는 것은 더 처참한 일이었습니다. 그래도 지금까지 오면서 수 많은 내시경 검사와 내진 등을 통해서 조금은 익숙해진 탓에 부끄럼이 덜 해진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습니다.

이제 모든 준비를 마치고 수술만이 남았습니다.


본 작성 글은 힐오(Heal-O) 플랫폼의 운영주체인 주식회사 케어랩스로부터 소정의 원고료를 지원받고 작성한 콘텐츠입니다

※ 본 콘텐츠는 작성자의 실제 경험에 기반한 개인 사례이며,
의료적 판단이나 치료 결정은 반드시 의료진과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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