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환우의 이야기
저는 2014년 12월 간경변 진단을 받고 B형간염 항바이러스제를 먹었지만 암을 막지는 못해서, 2015년 11월 간암 수술을 받았습니다. 수술 전 검사는 꽤 복잡했습니다. 흉부 엑스레이, 심전도, 뼈 스캔, 펫 씨티(PET CT), 위 내시경, 폐 CT, 기생충 검사, ICG-R15 테스트, 혈액 검사 등 이전까지는 용어도 몰랐던 여러 검사를 받았습니다. ICG-R15 테스트는 검사 전에 미리 공부를 해두었는데, 간 기능 상태를 알아보기 위한 검사입니다. ICG는 인도시아닌 그린(Indocyanine green)의 약자로, 간기능-순환기능 검사나 안저검사에 쓰이는 형광색소입니다. 간에 의해 선택적으로 흡수되고 담즙으로 배출되기 때문에 간의 병변이나 절제 가능 범위를 가늠하는 데 유용합니다. 다행히 이 수치가 정상치를 웃돌아 수술 후 관리만 잘 하면 될 것 같다고 안심하였습니다.
저는 복강경 수술을 원했는데, 수술을 담당한 주치의는 “열고 보면서 수술을 해야 암세포를 깨끗이 제거할 수 있다”며 제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개복 수술을 하게 되었습니다. 수술 당일 오전 7시15분, 병원 직원이 예정된 시간보다 훨씬 일찍 휠체어를 가지고 나를 데리러 왔습니다. 마음의 준비가 덜 된 탓에 조금 당황스러웠습니다. 수술실로 가는 동안 여태까지 살아왔던 날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습니다. 지금껏 살면서 내가 암환자가 되고 대수술을 받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수술실이 가까워질수록 심장박동도 급격히 빨라졌습니다. 대기실에 있는데 어느 남자 한 분이 휠체어를 타고 왔습니다. 잔뜩 긴장했는지 가볍게 떨고 있었습니다. 저도 떨리기는 마찬가지였지만 그의 손을 꼭 잡고 말을 시켰습니다. 얘기를 주고 받으며 그분은 조금 안정을 찾는 것 같았습니다. 덕분에 나도 한결 차분해졌습니다. 또 다른 여성 한 분은 하염 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그 마음이 꼭 내 마음 같아서 다독거려주고 싶었습니다. 우리 모두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이 방에서 무사히 살아나갈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수술 대기실에서 느꼈던 무수한 감정은 이제껏 살아오면서 느낀 적이 없는 순수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눈짓으로 서로를 격려하며 각자 수술실로 들어갔습니다. 의료진이 분주히 수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절차에 따라 이름과 생년월일을 확인했습니다. 차가운 수술대에 누워 있으니 몸이 경직되었습니다. 어찌나 추웠던지, 몸이 덜덜 떨렸습니다. 드디어 마취과 의사가 들어오고, 마스크를 씌우더니 숫자를 세라고 합니다. 넷까지 센 것 같습니다. 눈을 떠보니 회복실이었습니다. 간호사가 이름을 묻고는 바로 입원실로 옮겼습니다. 아내가 환하게 웃으며 나를 맞이하였습니다. 수술이 잘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정신이 들락날락하는 가운데 수술 전 연습한 볼 띄우기 기구(폐협착 예방용)를 열심히 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수술 자리가 아파 욕이 절로 나왔습니다. 그래도 고마운 사람들에게 보답하는 길은 빨리 낫는 것 밖에 없다는 생각에 악착같이 불었습니다. 공 3개를 한 번에 올려야 성공인데, 아픈 배를 움켜쥐고 숨을 짜내도 1개를 올리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8시간 동안 대수술을 받은 환자 치고는 꽤 잘 하고 있다고 저를 위로해보았지만 작은 공 3개를 띄우는 일은 지구를 드는 것만큼 어렵게 느껴졌습니다.
다음 날 회진을 온 주치의가 수술에 대해 설명해주었습니다. 간 좌엽 S3만 절제하려다가 확실하게 암세포를 제거하기 위해 범위를 넓혀 S2도 절제했다고 들었습니다. 안도의 한숨이 나왔습니다. 아내에게 전해 들은 바로는 내 간은 여전히 중기 간경변 상태였습니다. 암 세포는 제거했지만 간 상태가 좋아진 것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간호사는 진통제 버튼 사용법을 알려주며, 통증이 심하면 누르라고 했습니다. 생각보다는 아프지 않아서 진통제 버튼을 자주 누르지는 않았습니다. 걷기를 많이 해야 장이 제대로 자리를 잡고 장폐색도 피할 수 있다고 해서 수시로 복도를 왔다 갔다 했습니다. 그러다 보면 병동에는 아픈 사람만 눈에 들어왔습니다. 환자는 말할 것도 없고 옆에 있는 보호자도 몸이 성치 않아 보였습니다. 심지어 의료진도 아픈 사람인 듯 했습니다. 병원에 오래 있으면 없던 병도 생긴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았습니다. 하루 빨리 퇴원하고 싶은 생각에 무리한다 싶을 정도로 열심히 걸었습니다.
수술 이틀 째 요도에 끼운 호스를 뺐습니다. 동작이 자유로워져 혼자 수액걸이를 끌고 다니며 운동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날 밤 잠이 안 와 휴게실에 앉아 있었습니다.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고통스럽게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습니다. 옆에 앉아 계시던 분이 “아버지에게 생체 간이식을 해준 효자”라고 말해주더군요. 수술 후 통증이 너무 심해 잠을 못 자고 저러는 중이라고 했습니다. 나는 잠시나마 가족에게서 간이식 수술 받기를 원했기에, 그 청년의 모습을 보고 간암제거 수술을 잘 받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내나 아들이 그 고통을 겪게 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수술 후 넷째 날이 되자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되었다는 느낌이 왔습니다. 기록실에서 절제 부위 조직 검사지를 복사해 해석했는데, 비교적 예후가 좋은 초기 간암이었습니다. 수술 경과도 좋고 특별한 이상 소견이 없었습니다. 수술 1주일 후 드디어 실밥을 뽑고 퇴원을 했습니다. 보통 간암환자는 수술에서 퇴원까지 열흘 정도는 걸리는데 저는 꽤 빠른 셈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