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0여년 전의 일이다.
2010년 7월 여름 더위가 막 시작되려고 할 때, 조카의 어린 딸을 보며 집 거실에서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면서 느긋하게 쉬고 있었는데, 가슴에서 딱딱한 멍울이 만져졌다. 이전 진료 때 “원래 치밀 유방이어서 만져지는 게 좀 있다”는 말을 들었기에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조카의 성화에 떠밀려 근처 병원에서 엑스레이와 초음파 찍었는데, 의사는 심각한 표정으로 대학병원에 가보라는 것 아닌가. 떨리는 가슴을 안고, 용감하게도 혼자 서울성모병원으로 갔다. 검진 결과는 유방암이었다. 유방암이 꽤 진행됐으며, 왼쪽 가슴은 모두 절제해야 한다는 의사의 말에 멍해졌다. 머릿속이 백지장처럼 하얘졌다. 아무 생각도 할 수 없는 채로 한참 동안 병원에 앉아 오가는 환자들만 바라봤다. 남편과 아들에게 유방암 진단 사실을 알리고 나서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본 차창 밖 저녁 풍경이 왜 그리도 처량해 보이던지… 그저 '병원에서 하라는 대로 치료만 잘 받으면 되겠지' 하는 생각뿐이었다.
아들이 달려왔다. 남편은 애써 태연한 척 하며 “요즘 의술이 좋으니 치료를 잘 받고 의사가 시키는 대로 하면 잘 되겠지” 하며 날 위로했다. 나도 정신이 없어 제대로 볼 수 없었지만, 그 때 남편의 침울한 표정은 너무나 안쓰러웠다고 아들이 나중에 전해줬다. 나는 엄마이기에, 놀라서 걱정하는 아들을 생각하니 더 마음이 쓰라렸던 기억이 있다. 수술실로 들어가는 나를 보며 창백한 얼굴로 초조해 하던 아들의 모습을 떠올리면 지금도 저릿저릿해진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암 진단 전에 주변 사람들이 “얼굴이 유난히 까칠해지고 힘들어 보인다”고 걱정을 하긴 했다. 그 소리를 듣고도 내가 워낙 마른 체질인데다가 갱년기를 겪어서 그런가 보다 했다. 평소보다 많이 피곤했고 몸이 처지는 느낌이 있었는데, 내가 무심코 넘기는 사이에 병이 커지고 있었던 것이다. 완벽하고 철저한 성격 탓에 과도한 스트레스와 피로를 잊고 지냈다. 치료를 앞두고 정밀 검사를 하고 주치의를 만나 치료 과정에 대한 설명을 들었지만, 남의 나라 얘기를 듣는 듯 여전히 실감나지 않았다. 주치의는 항암 치료를 먼저 4회 한 뒤 수술을 하겠다고 했다. 당시로서는 그저 병원 치료에 내 몸을 맡기는 것 말고는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마음의 준비가 전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얼떨결에 첫 번째 항암 치료를 받았다. 사실 항암 치료가 뭔지, 어떤 효과와 부작용이 있는지 자세히 알지도 못했다. 그저 주치의가 하라고 하니까 믿고 시작했을 뿐이다. ‘잘 되겠지’ 하는 마음뿐이었다. 항암 치료의 부작용은 혹독했다. 항암제 주사를 맞고 며칠이 지나자 입안이 다 헐어 물 한 모금 넘기기도 힘들었다. 미각을 잃어 음식을 먹어도 맛을 느낄 수 없었고, 억지로 뭘 먹어도 구토증 때문에 곧바로 비워내야 했다.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고, 머리를 감을 때마다 머리카락이 한 움큼씩 빠졌다. 내 삶은 순식간에 피폐해졌다.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잠도 못자면서 신경은 날카로워졌고 체력은 금세 바닥이 나 버렸다.
※이 글은 2010년 유방암 수술과 항암 치료를 받았지만 재발 없이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유혜경(61) 님의 암 투병 체험을 정리한 것입니다.